[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외국 출신 올림픽 국가대표 '먹튀' 막으려면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먹튀'는 '먹고 튀기'의 줄임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중문화사전은 "프로 스포츠 리그에서 높은 계약금이나 연봉을 받고 이적한 선수가 대우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기대만큼 열심히 경기에 임하지 않는 모습으로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을 실망시키는 경우에 사용된다. (중략) 현재 이 단어는 본래의 의미와 달리 그 쓰임이 확대돼 '단순히 이익만을 취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일'에 두루 적용된다. 가령 실망스러운 미팅이나 사기성 결혼, 과외를 빙자한 사기성 아르바이트, 치고 빠지는 유동성 자본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고 풀이해놓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먹튀'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가 아이스하키나 바이애슬론 등 일부 취약 종목의 메달 유망주들을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내세운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올림픽이 끝나면 다들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고 비난 공세를 펼친다. 이번에 출전할 한국 국가대표 150여 명 중 귀화 선수는 19명에 이른다. 4년 전 소치 동계올림픽 때 태극마크를 단 귀화 선수가 한국 태생의 화교 3세 공상정 한 명이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변화다. 종목별로는 아이스하키가 남자 7명과 여자 4명 합쳐 11명으로 가장 많고 바이애슬론 4명, 스키 2명, 아이스댄싱 1명, 루지 1명이다. 출신국은 캐나다(8명), 미국(5명), 러시아(4명), 노르웨이(1명), 독일(1명) 순이다. 이 가운데는 입양아 출신 4명과 어머니가 한국인인 선수도 1명 포함돼 있다.
예전에도 배구의 후인정, 축구 사리체프(한국명 신의손)와 데니스(한국명 이성남), 탁구 자오즈민과 당예서 등 운동선수의 귀화 사례가 있었다. 이들은 요건이 까다로운 일반귀화나 혈연·국제결혼 등에 의한 간이귀화를 통한 것이어서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당시 특별귀화 대상에는 1항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민인 자(성인이 된 후 입양된 자는 제외)'와 2항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만 규정돼 있었다.
2010년 국적법 개정으로 '과학·경제·문화·체육 등 우수한 능력을 보유하고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자'라는 3항이 추가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특별귀화는 요건과 절차가 비교적 간단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는 조건으로 본래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개정법 발효 첫해인 2011년부터 지난해 11월 30일까지 3항에 의한 우수 인재 특별귀화자는 모두 119명이고 분야별로 보면 과학 58명, 체육 25명, 인문학 16명, 첨단기술 9명, 문화예술 6명, 경영·무역 5명이다. 이 제도가 논란을 빚은 것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체육 분야 특별귀화자가 갑자기 늘고 이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특별귀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주장은 돈으로 메달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어 승리보다 참가에 의의를 두는 올림픽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혈통도 다르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선수가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다른 귀화 희망자와 견줘 특혜라는 지적도 제기되며, 이중국적을 허용하다 보니 '먹튀' 가능성도 제기된다. 농구, 마라톤 등의 종목에서 흑인 선수들의 귀화 시도가 무산된 것과 비교해 백인 중심의 인종차별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올림픽 마라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외국인 우수 선수들의 귀화가 줄을 이으면 해당 종목의 국가대표를 목표로 훈련하던 많은 꿈나무가 운동을 포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기단체 등은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다른 나라 선수들의 잔치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해당 종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자는 계산을 앞세운 것이 사실이다. 예전처럼 혈통의 순수성만 따질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국경의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찬성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은 러시아 대표가 된 쇼트트랙의 안현수 선수를 대표적 사례로 든다. '먹튀' 의심에 대해서는 특별귀화 선수들이 지도자 등으로 한국 동계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반박한다. 캐나다 동포 백지선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은 "핏줄보다 대표팀에 대한 긍지와 헌신이 중요하다"면서 "그들은 한국에서 6∼7년을 뛰며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를 말할 줄 알고, 동료의 존경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재외동포재단이 지난해 실시한 '재외동포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38.0%)을 꼽았다. 다음은 '한국 국적'(36.8%), '한국 혈통'(14.3%), '한국어 사용'(8.4%), '국내 거주'(2.4%) 순이었다. 2013년 조사 때와 비교하면 '자부심', '혈통', '국내 거주'를 꼽은 비율이 줄어든 반면 '국적'과 '한국어 사용'이라는 응답은 늘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각국이 외국인 우수 인재를 유치하려고 벌이는 '글로벌 인재전쟁'(Global War for Talents)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외국인 입국을 까다롭게 제한하던 인구대국 중국마저 최근 노벨상 수상자와 기업인 등에게 10년짜리 비자를 무료로 발급하기로 하고 방문할 때마다 체류할 수 있는 기간도 기존의 두 배(180일)로 늘렸다.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특별귀화제도는 올림픽을 위해 급조된 제도도 아니다. 7년간 우수 인재 특별귀화자는 같은 기간 전체 국적취득자 9만6천745명의 0.12%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체육 분야는 21.0%에 그친다.
대상 선정 등에 시비의 소지가 있었던 건 부인하기 어렵지만 올림픽 개막이 눈앞에 닥쳐온 만큼 일단 논쟁을 접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위해 뛰는 귀화인 국가대표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마음으로 응원해줄 것을 제안한다. 메달 획득 여부나 메달 색깔에 연연하지도 말자. 올림픽 성적이 특별귀화제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잣대도 아니다. 언론들도 이번 대회를 계기로 민족감정에 호소하거나 인종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 태도를 버려야 한다. '먹튀'가 생길 것을 우려해 특별귀화를 반대한다지만 우리가 마음을 열고 그들을 진정한 한국인으로 대해야 '먹튀'할 마음을 품지 않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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