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태극전사] 바이애슬론 프롤리나 "프랑스에서 만난 태극기에 뭉클"
프롤리나, 2016년 3월 귀화…아바쿠모바는 2017년 1월 귀화
프롤리나 "간단한 인사는 한국어, 긴 대화는 스마트폰 번역기로"
입 모아 "평창에서 메달 획득" 자신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올림픽을 위해 국적을 바꿨다. 사랑하는 아들을 러시아에 두고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목표는 단 하나, 마지막이 될지 모를 올림픽 무대를 다시 밟는 것이다.
한국 바이애슬론 귀화 1호 안나 프롤리나(34)는 러시아 출신 선수다. 2016년 3월 귀화해 '프로리나안나'라고 적힌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한국 여자 바이애슬론의 20위권 진입에 가장 큰 역할을 소화해 총 4장의 평창 출전권을 대표팀에 선사했다.
프롤리나의 경력은 화려하다. 2001년 바이애슬론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에는 평창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 여자 계주팀 일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스프린트에서는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프롤리나는 2013년 출산 이후 러시아에서 자리를 잃었다. 마침 대한바이애슬론연맹은 평창 대회를 준비하며 바이애슬론 강국 러시아의 우수 선수에 주목하고 있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프롤리나는 생애 두 번째 올림픽을 눈앞에 뒀다.
성과는 확실하다. 2016년 하계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한국 바이애슬론 사상 첫 메달을 선사했다. 2017-2018 국제바이애슬론연맹(IBU) 4차 월드컵에서는 한국 여자 월드컵 역사상 최고 순위인 8위에 올랐다.
귀화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갈린다. 비판하는 쪽은 대회를 위해 정체성이 불확실한 선수를 무리해서 귀화했다고 말한다.
프롤리나는 점점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다. 그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유니폼과 단체복에 있는 태극기를 보면 한국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3차 월드컵이 열린 프랑스에서 태극기를 든 관중을 만났다. 반갑고 뭉클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한국어는 어렵다. 프롤리나는 "훈련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많이는 못 했다. 간단한 인사는 한국어로 한다. 대신 스마트폰 번역기를 이용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대신 프롤리나는 쇼핑을 통해 한국을 알아간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작은 그릇이나 소품을 사서 소중하게 보관한다. 그는 "네일아트에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한 네일아트 모두 만족스러웠다"며 웃었다.
그의 평창 동계올림픽 첫 번째 목표는 메달이다. 가벼운 무릎 부상이 있지만, 컨디션을 조절해가며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두 번째 목표는 좀 더 특별하다. 다시 한 번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를 준 한국에 바이애슬론을 조금이라도 알리려고 한다.
프롤리나는 "한국 여자팀이 바이애슬론 계주에 나가는 게 처음이다. 계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 한국 국민에게 바이애슬론이라는 종목을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프롤리나의 가족은 여전히 러시아에 거주한다. 귀화 이후에는 올림픽 준비에 전념하느라 가족과 함께 지낼 시간이 적었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면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아직 아들이 어려서 엄마를 많이 찾는다. 나도 아들이 보고 싶어 매일 영상통화를 한다. 올림픽이 끝나면 못 보낸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며 마음 한곳에 간직한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2017년 1월 귀화한 에카테리나 아바쿠모바 (28) 역시 평창에서 활약을 다짐한다.
2015년 하계세계선수권대회 혼성계주 금메달리스트인 아바쿠모바는 "한국 대표팀에서 함께 어울리며 점차 한국인이 됐다는 걸 느낀다. 매우 친절하고 상냥하다"며 "매운 음식을 잘 먹진 못하지만, 조금씩 좋아하는 음식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바쿠모바는 "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지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올림픽이 끝나면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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