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 들려주는 한국 현대사 이야기
고교 역사교사 표학렬씨 신간 '한 컷 한국현대사'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이한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기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1987년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누구나 그 사진을 보면 뜨거웠던 1987년의 여름을 떠올리게 된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표학렬씨가 쓴 '한 컷 한국 현대사'(인문서원 펴냄)는 이한열의 사진처럼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역사를 읽는 책이다.
1919년 3월25일에 찍힌 시흥보통공립학교 7회 졸업식 사진에는 칼을 차고 제복을 입은 교사들과 한복을 입은 학생들이 등장한다. 4년제인 보통학교는 오늘날의 초등학교로, 사진 속 학생들은 초등학교 졸업생이다. 어린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제복과 칼을 내세웠던 일제의 무단통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저자는 교사의 칼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심어주고자 한 공포정치의 한 측면이며 무단통치 그 자체가 '칼'이었다고 설명한다.
1925년 3월 중국 상하이 공동조계에 있는 인성학교 졸업식 사진에는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사진에는 교장이었던 여운형의 모습도 보인다.
인성학교는 상하이 임시정부 산하의 한인학교다. 재정난 속에 상하이 교민들의 모금으로 운영됐으며 독립운동가 최중호를 비롯한 교사들이 무보수로 학생들을 열성껏 가르쳤다.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 중 많은 이가 독립운동에 나섰다. 1930년 상하이에서 조직된 상하이한인소년척후대는 인성학교 출신들이 만든 독립운동단체다. 저자는 졸업식 사진에서 망국의 국민으로 독립투사로 살아갈 운명의 짐을 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읽어낸다.
탄광으로 끌려간 징용노동자는 숙소의 벽에 '어머니 보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는 한글 낙서를 남겼다. 이들이 벽에 손톱이나 젓가락으로 새긴 글은 어린 나이에 끌려가 굶주림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징용노동자들의 아픔을 보여준다.
책은 이처럼 빛바랜 33장의 흑백 사진을 통해 1910년부터 1971년까지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00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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