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녀 숨진 참혹한 현장에 다시 선 엄마는 흐느꼈다
현장검증 지켜본 이웃 주민 "세상에 이런 일이…아이들 불쌍하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정모씨! 자신이 한 행위를 현장검증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지난달 31일 새벽 화마로 세 남매를 세상을 떠난 보낸 엄마가 실수로 불을 낸 혐의로 다시 현장에 섰다.
3일 오전 광주 북구 두암동 한 아파트에 현장검증 하기 위해 도착한 세 남매의 엄마 정모(23)씨는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에 탄 후 곧바로 경찰의 현장검증 실시 고지를 받았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포승줄에 묶인 정씨의 두 팔은 화재 당시 화상을 입은 상처 탓에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세 남매가 화마에 숨지는 끔찍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의 질문에 정씨는 현장검증을 위해 경찰 호송차에서 내린 후 반사적으로 피할 길 없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현장검증을 위해 아파트 11층 정씨의 자택의 문이 열리자 메케한 불에 탄 냄새가 훅 퍼져 올라왔다.
현관 입구에는 네살, 두살, 15개월 딸 등 세 남매의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현관 밖에서 보이는 집안 내부 모습은 참혹했다.
거실은 본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불에 타 훼손돼 있었고 바닥에는 타다 남은 이불더미와 어린아이들 장난감 등이 널려있었다.
정씨는 사건 당일 소주 9잔을 마시고 귀가한 장면부터 경찰의 지시에 따라 하나씩 재연했다.
가방을 놓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다시 어린 자녀들이 잠든 작은 방 앞에서 담뱃불을 끄는 장면까지 정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묵묵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흐느끼며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해 보였다.
특히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재연할 때는 "창문을 열었어요? 안 열었어요"라는 경찰의 큰 목소리도 들렸고, 마네킹이 동원된 작은 방 화재 정황 재연에서는 정씨는 더욱 힘겨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현장검증이 시작되고, 끝난 후 기자들의 질문에 한마디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이날 현장검증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화재로 숨진 세 남매의 장례도 열렸지만, 엄마인 정씨는 이 사실을 모른 채 검증에 참여했다.
경찰은 "그동안 수사 내용과 현장검증 내용에 큰 차이점은 없었고, 실수로 불을 나게 했다는 자백 그대로 당시 상황을 다시 보여줬다"며 "정씨가 크게 오열하지 않았지만, 흐느끼며 거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답변하는 등 침울하게 현장검증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며칠 전 새벽잠을 깨운 화재 소식에 대피하기도 한 주민 수십여명도 이날 현장검증 장면을 멀리서 지켜봤다.
주민 이모(52)씨는 "정말 가슴 아픈 일이고, 철부지 부모다"고 한탄하며 "우리나라도 부모가 되는 교육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50대 다른 여성은 정씨의 모습을 보고 "세상에 무슨 일이냐.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혀를 차며 "우리 세대는 자식 때문에 살았는데 엄마가 자포자기한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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