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m 공사장 펜스에 막혀버린 생계…시청은 '나 몰라라'
춘천 전통시장 주차장 공사에 주변 상인 피해 심각 '사실상 개점휴업'
피해 예상 못 한 춘천시 "보상 규정 없어"…상인들 "안이한 행정" 비판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사람들이 이 골목에 상가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장사는 둘째 치고 이젠 흡연 골목으로 변해서 가게에 혼자 있기도 무섭네요…"
춘천시가 온의동 풍물시장 인근에 공사 중인 대형 주차시설 탓에 공사장 바로 옆 건물 상인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공사장 소음이나 먼지 때문이 아니다. 공사장 주변으로 설치된 높이 2.5m 안전펜스가 오른편 상가를 바깥 시야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던 상가는 하루 내 펜스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져 사람들이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이 돼버렸다.
부푼 꿈을 안고 새 건물에 둥지를 튼 상인들은 펜스에 막혀버린 생계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청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 상인들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보상 규정이 없다"며 희생만을 강요하는 상황이다.
지난 9월 옷가게 문을 연 이모(37·여)씨는 "이렇게 오래 공사하는 줄 알았으면 여기 안 들어왔을 겁니다. 하루에 5명도 안 지나가요. 지인들은 물론이고 택배 기사들도 건물 주변을 몇 바퀴 돌아서 겨우 찾아올 정도예요"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의 가게 옆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손모(51·여)씨도 "공사 기간이 무려 7∼8개월이라는데 공사 하루 전날 현장소장이 '펜스 설치한다'고 통보한 게 전부예요. 월세 내기도 벅차고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판입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춘천시는 지난 10월 10일 지역 대표 전통시장인 온의동 풍물시장 활성화와 주변 주차난 해소를 위해 65억원을 들여 대형 공영주차장을 짓기 시작했다.
풍물시장 일대는 부족한 주차시설로 인해 만성적인 주차난이 발생, 민원이 잇따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공사장 주변 안전펜스를 상가와 너무 가깝게 설치한 탓에 탁 트였던 상가 앞은 하루아침에 폭이 2m도 되지 않는 인적 없는 골목길로 변했다.
하루 수백 명이 지나던 탁 트인 곳이 밖에서 간판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침침한 골목이 됐다.
피해를 본 가게는 이씨의 옷가게, 손씨의 꽃가게, 그리고 네일아트 샵 등 모두 세 곳이다.
주로 예약제로 운영하는 네일아트 샵은 타격이 덜하지만, 바깥에 비치는 전시나 진열이 중요한 옷가게와 꽃가게는 두 달째 매출이 거의 제로(0)다. 사실상 개점휴업이다.
인적이 드물어 비행청소년들이나 흡연하거나 노숙자들이 드나드는 일이 더 잦다.
주인이 모두 여성인 데다 골목길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도 없어 범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에 상인들이 시청과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보상해줄 수 있는 관련 근거가 없다. 춘천시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한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였다.
이씨 등은 "공사가 시작되기 전 시청에서 어떠한 설명도 없었고, 민원을 제기하자 그제야 직접 와서 보고는 피해가 심각하다는 걸 알더라"며 "어쩜 이렇게 안이한 행정을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미리 설명해줬더라면 펜스 위치를 조금이라도 안쪽으로 조정해보거나 칙칙한 회색 펜스 대신 알록달록한 그림이 입혀진 펜스를 설치해 미관을 개선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시에서는 펜스에 홍보 현수막을 걸어주거나 시청 공무원들이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홍보 글을 올려주겠다고 했으나 상인들은 사후약방문식 태도에 서운함과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짓다 보니 또 다른 불편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며 "현재 보상해드릴 방법은 없으나 준공이 되면 주변 상권이 좋아져 매출도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마지못해 가게 문은 열지만, 이제는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혼자 가게를 지키는 것도 무섭다"며 "지역 발전을 위해 한 사람의 가계 경제 따위는 나 몰라라 해도 되는 건지 황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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