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김태리 "광화문광장에서 울컥한 적 많았죠"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30년 전 격동의 시기를 스크린에 옮긴 '1987'에서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는 극 중 몇 안 되는 가공의 인물이다. 유재하와 김승진을 좋아하고 주말이면 미팅에 나가는 평범한 87학번 대학 신입생은 몇 달 만에 사회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저항과 일상 사이의 기로에 섰던 당시 보편적 시민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김태리는 지난해 연말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 촛불집회에 나갔다. 영화 속 연희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경험한 시간이었다.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리는 1987년의 서울시청 앞 광장과 지난해 광화문광장이 닮은 듯 다르게 보였다고 말했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어요. 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과 삶을 버리고, 분노하는 마음으로 서로 힘을 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슬펐어요. 울컥한 적이 많았어요. 연희가 본 광장은 그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구원자가 있다면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요.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 자기 자리에 있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광장에 나가게 되는 건 비슷한 것 같아요."
김태리는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나서 실제로 연희처럼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나만 잘살면 돼'라는 생각이 위험하다고 여기게 됐어요.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는 나부터 사회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에는 김태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들이 펼쳐진다. 연희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찾아보고 공부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고사를 지낸 장소는 신촌에 있는 이한열기념관이었다. 시위진압 경찰에 쫓기는 장면을 촬영하면서는 30년 전 대학생들의 공포감을 간접 체험했다. "아수라장에서 누가 때릴지도 모른다는 숨 막히는 느낌이 있었어요. 최루탄이 터지는데 비명이 나오더라고요."
연희의 심경 변화는 영화 중반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김태리는 "선배들이 많이 나와 처음엔 조금 덜 부담됐지만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부담감이 닥쳤다"며 "전반부에 선배들이 쌓아놓은 에너지를 딛고 흘러가야 하는 인물이다 보니 다이나믹하고 복잡한 감정과 장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공수사 담당 경찰 간부와 공안검사, 교도관과 재야인사 등이 재현하는 역사의 무게감은 보는 이를 적잖이 힘들게 한다. 연희의 마음은 관객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주는 역할도 한다. 잘생긴 남자 선배를 바라보는 신입생의 설렘, 삼촌에게서 '마이마이'를 선물 받고 느끼는 흥분 같은 것들이 그렇다.
"마이마이가 그렇게나 위대하고 모든 이가 갈망하는 것인지 처음에는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큰 시험 치르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아이처럼 그렇게 좋아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김태리는 지난해 '아가씨'로 화려하게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충무로가 가장 주목하는 여배우가 됐다. 올해는 연극무대에서부터 다져온 내공을 본격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한 해다. "초반에는 고민이 많았고 중반에는 영화 두 편 촬영하다 보니 바빴고요. 지금은 드라마 촬영하면서 틈틈이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있어요." 김태리는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 촬영을 마쳤고 이병헌과 호흡을 맞출 '미스터 선샤인'으로 안방극장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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