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과 부의 불평등 피할 수 있다…미국 방식을 피하면 된다"
피케티 등 소득분배 학자들, 서유럽식 정책과 체제 장점 옹호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소득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미국 방식을 피하면 불평등 심화를 피할 수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를 비롯해 소득분배를 연구하는 각국 학자 100여 명이 참여한 네트워크인 '세계 부와 소득 데이터베이스'(WID.world)는 14일(현지시간) '세계의 불평등 보고서'를 펴내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WID는 이와 관련한 별도 자료를 내어 지난 40년 가까이 미국이 취해온 정책들을 대표적 실패 사례로 들면서 "미국의 실험은 일탈적인 처방"이라고 혹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1980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대부분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됐으나 빈부 격차가 커지는 속도엔 큰 차이가 있다.
WID는 미국과 유럽을 그 대표적 사례로 들면서 1980년엔 양측의 불평등 수준이 비슷했으나 이후 최상위 부자들과 나머지 사람들 간의 격차가 미국에선 엄청나게 커진 반면 서유럽에선 약간만 증가했다고 소개했다.
상위 1%의 소득이 국가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엔 두 지역 모두 10% 정도였으나, 2016년엔 서유럽은 12%로 소폭 증가한 데 그친 반면 미국에선 20%로 뛰었다.
미국에선 지난 37년 동안 상위 1%의 연 실질소득은 205%, 상위 0.001% 소득은 636% 각각 증가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하위 50%의 연 평균 임금(인플레 등 고려 계산)은 성인 1인당 1만6천 달러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상위 절반의 소득은 (후진국이었다가 경제가 급성장한) 중국과 동일한 비율로 늘어난 반면 하위 50%(1억1천700만 명)의 소득은 늘어나지 않았다. 보고서는 한 나라 속에 두 국가가 존재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반면에 서유럽에선 하위 절반 인구의 소득 증가율이 그동안의 전반적 경제성장률과 엇비슷하게 같이 높아졌다.
이런 극적인 차이는 미국에선 불평등이 커질 여러 정책과 제도가 어울려 빈부격차가 폭발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예컨대 부자와 기업들에 유리하게 세율과 세제가 운영됐고, 연방 최저임금제가 무너지고 노조는 약화됐으며, 교육 접근권이 불평등해졌으며, 금융산업 규제완화와 과도한 특허 보호 등이 격차 확대 속도를 올렸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1980~1990년대 급격하게 심화된 임금 소득 격차는 2000년대 초부터 완화, 안정되기 시작했다면서 그러나 그 이후엔 자본 소득이 불평등 확대의 핵심 요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창업자 등 세계 최고 부자들의 사례에서도 보듯 부자들의 소득 증가분의 대부분은 부동산과 주식 등 자본에서 얻는 소득, 즉 불로소득이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이 최근 밀어붙인, 주로 상위 1%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인세와 부동산세 인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세제 개편은 미국을 갈수록 더욱 심한 '불로소득의 사회'(rentier society)로 만들 것이라고 보고서는 비판했다.
많은 사람이 미국 노동자 임금과 소득 정체는 세계화, 중국, 기술 발전 탓으로 돌려왔으나 이번 보고서는 이것만이 원인이 아니라 더 큰 이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선진국 가운데 사실상 미국만이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을 확대하는 '유일무이한 실험'을 하고 그 결과 '유일무이한 재앙'을 맞았다는 것이 피케티 등의 주장이다.
이들은 따라서 국가가 (서유럽처럼) 빈부 격차를 줄일 더 공정한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을 적극 펴면 지난 시절의 소득 불평등 악화 속도를 늦추고 일정하게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부익부 빈익빈을 촉진하는 1980년대 이후 미국식 방식을 벗어나 서유럽식 정책만 택해도 앞으로 30년 뒤엔 소득 격차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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