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최측근 페터 알트마이어 총리실장 겸 재무부 장관,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州) 총리와 늦은 밤 모여 와인을 한잔했다
모임을 마치고 다른 이들이 모두 떠난 뒤 자신이 당수로 있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 주요 인사 중 가장 편안하게 여기는 측근이나 동료와 자리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엔 당시 한창이던 자유민주당, 녹색당과의 연정 협상 현황이 '안주'로 올랐다.
독일이 2030년까지 기후변화에 대응한 탄소 저감 목표를 달성하려면 저감 속도를 더 내야 한다는 녹색당의 주장이 화제가 됐다.
발전량 기준으로 도대체 얼마나 줄여야 한다는 거야!
보수 진영인 기민당과 자민당은 3∼5기가와트 발전량 감소를 감당할 수준으로 봤지만, 녹색당은 8∼10기가와트를 제시하는 상황이었다.
그 차이를 듣고서 메르켈이 나섰다.
"두어 기가와트 차이로 협상이 깨지도록 둘 순 없잖아."
그러곤, 생각 끝에 7기가와트를 중재안으로 내놓았다.
독일 최대 인구를 가진 당내 '큰 손' 라셰트 주 총리는 바로 반응하지 않은 채 일단 와인으로 목을 적셨다.
"그의 가슴엔 두 개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듯했다." 지난달 27일 이 에피소드를 다룬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이렇게 전했다.
명색이 주 총리이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의 중공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전력 단가가 오를 수도, 기업 일자리가 날아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그 탓에 연정을 깰 순 없으니 고통스러웠다.
FAZ는 메르켈이 그때, 1930년 3월 있었던 바이마르공화국의 대연정 붕괴를 떠올렸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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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집권 다수 사민당은 미국 대공황 파고에 휩쓸려 실업률이 치솟자 실업보험료를 올리려 했지만, 정책 이견을 빚었고, 결국 헤르만 뮐러 총리가 사퇴하는 것으로 대연정 수명을 끝냈다. 야당의 반대보다 당내 좌파와 노동계의 저항이 더 결정적이었던 것이 사민당으로선 더 뼈아픈 대목이었다.
3.5%이던 보험료율을 애초 4.0%로 올리려다 3.75%로 조정했지만, 그 인상 폭 0.25%포인트 때문에 당이 분열해 집권을 마감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악몽 같은 역사를 고려하면 그 문제는 오히려 작았다. 그로부터 3년이 채 안 돼, 1차 세계대전 전후 패전국 배상 부담에 대공황까지 겹쳐 독일 경제가 파탄 난 틈에 뚫고 나치가 집권하는 불행이 이어졌고, 그 기원의 한 중요한 계기가 이 대연정 종식이었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1차 대전 이후 독일에 최초로 등장한 공화정인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이던 1928년 5월 나치당의 총선 득표율은 불과 2.6%였다. 하지만 대공황이 터지고 대연정이 무너진 뒤 치러진 1930년 9월 총선 때 나치당은 사민당 다음으로 높은 18.3% 지지율의 2당이 됐다. 이후 1932년 7월 마침내 37.3%를 얻어 1당에 오른 뒤 같은 해 11월 33.1%로 다수당을 유지하고는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1월 총리를 꿰차기에 이른다.
더 큰 지지와 권력을 탐한 히틀러는 1933년 3월 다시 총선을 치렀고, 자신이 원한 과반에는 못 미쳤지만 43.9% 지지를 받아 종전 최대 정당이던 사민당을 18.3%의 초라한 2당으로 다시 한 번 전락시켰다. 그땐 밥 먹듯이 총선을 자주 했다.
메르켈 총리가 상기했다는 역사와 교훈은 바로 이런 것이다. 실제로 사민당 출신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생전에 메르켈 총리에게 이 에피소드를 자주 얘기해 줬다고 FAZ는 소개했다. 메르켈 총리는 슈미트 전 총리와 당적이 다르지만, 함부르크 태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다 그의 정치적 조언을 경청했다.
이 점에서 메르켈 총리는 두어 기가와트 차이로 협상을 파탄 낼 수 없다며 타협 의지를 보였던 것이지만 결국 자민당, 녹색당과의 연정 협상은 실패했고, 그는 사민당과의 새로운 연정 협상에 들어갔다. 이 협상에 임하는 그의 일성은 "세계가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지 기다린다"였다. 정부 구성의 책임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히지만 알쏭달쏭한 이 언급의 온전한 뜻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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