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에 맞서는 필리핀 부통령 "초법적 처형에 저항하자"
'마약과의 유혈전쟁' 놓고 정부 1, 2인자 대립 심화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에서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놓고 정부 1, 2인자의 대립각이 커지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무자비한 마약 단속의 고삐를 죄자 인권변호사 출신의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이 정면으로 맞받았다.
로브레도 부통령은 10일 세계인권선언 69주년을 맞아 내놓은 성명에서 초법적 처형을 비롯한 각종 인권유린에 맞설 것을 국민에게 촉구했다.
로브레도 부통령은 "올해 인권의 날에는 인권 투쟁에 대한 우리의 공헌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인권 투쟁의 정신을 상기해야 한다"며 마약용의자 초법적 처형 등 필리핀의 인권유린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특히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거론하며 "우리는 인권 옹호를 위한 싸움을 강화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로브레도 부통령은 지난해 5월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돼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유혈소탕전, 사형제 도입 추진 등에 반대하며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작년 12월 로브레도 부통령에게 각료회의에 참석하지 말도록 하는 등 냉대하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가 마약 소탕 방식을 놓고 악화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6일 "나는 초법적 처형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어떤 인권기구도 마약사범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또 '묻지마식' 마약사범 사살로 비난을 받은 경찰을 마약 단속에서 배제한 지 두 달여 만에 마약과의 전쟁에 재투입했다.
그는 최근 잇단 행사에서 "나를 살인자라고 불러도 개의치 않는다", "인권단체들이 나를 계속 비판하는 데 진절머리가 난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는 작년 6월 말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3천900명 이상의 마약용의자가 경찰에 사살됐다. 자경단이나 괴한 등에 사살된 마약용의자까지 포함하면 총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현지 언론과 인권단체들은 추정한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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