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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헤매며…백민석 소설 '교양과 광기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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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헤매며…백민석 소설 '교양과 광기의 일기'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백민석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교양과 광기의 일기'(한겨레출판)가 출간됐다.
재작년 가을과 겨울, 쿠바에 머물며 찍은 사진들로 지난 7월 여행에세이 '아바나의 시민들'을 냈던 작가는 당시 여행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에는 직업이 소설가인, 작가 자신의 분신인 듯한 화자가 등장하는데, 앞부분에 잠깐 도쿄를 거칠 뿐 나머지는 모두 쿠바에서 겪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의 내용보다는 형식이 더 실험적이다. 소설가가 직업인 중년의 남성 주인공이 쿠바에 머물며 일기를 쓰는데, 그 바로 뒷장에 어떤 또다른 존재가 다른 일기를 쓴다. 이 존재는 처음부터 "내 안에는 전쟁놀이와 광란의 섹스를 좋아하는 10대 소년이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읽다 보면 이 소설 속 일기의 앞면을 쓰는 주인공과 뒷면을 쓰는 알 수 없는 존재가 한 사람의 몸 안에 공존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두 얼굴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말이다.
앞면의 주인공은 자크 데리다, 롤랑 바르트, 수전 손택의 책을 탐독하고 사진 찍기를 즐기며 SNS에 그럴듯한 문구를 올려 교양을 보여주지만, 뒷면의 존재는 하바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고 매춘을 하는 아가씨에게 집착하며 그녀를 괴롭히는 남자를 미친듯이 때리기도 한다.
앞면의 주인공은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지면 불안해 하는 합리적인 이성의 소유자이며 쿠바의 영웅적인 혁명가들을 존경하기도 하지만, 뒷면의 존재는 주변부를 기웃거리며 세상은 미국의 CIA와 마피아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힘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교양'과 '광기'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두 목소리가 꼬집는 대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과 돈을 좇는 인간의 중심 지향성이 주로 화두가 된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부분의 내정에 간섭해 친미 성향의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웠다. 그 과정은 결코 자유민주주의적이 아니었다. 쿠바는 기적적으로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역사를 꾸릴 수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이웃 나라인 아이티나 니카라과나 도미니카공화국이나 멕시코처럼 되었을 것이다. 지끔쯤 마약이나 매춘, 도박 같은 미국 쓰레기 문화의 생산·유통 기지가 되었을 것이다." (본문 167쪽)
"카스트로든 게바라든 완벽한 인간이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카스트로는 그저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뒤를 이은 또 다른 독재자였을 수 있고, 역사적으로 카스트로 형제는 바티스타보다 더 오래 권력을 쥐고 있었다. …게바라의 경우 그의 전장에서의 기록만 보면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그는 말하자면 적의 군대를 시쳇더미로 만드는 데 최적화된 인물이었다."(본문 142쪽)
작가는 소설 뒤에 덧붙인 '작가의 말'에 "교양이든 광기든 그는 한 사람이다. 한 사람을 두 가지 상반된 성질로 나눠 생각하는 일은 중심이라는 편의적이고 허구적인 위상에 대한 인간의 집착 때문"이라며 "중심은 세상에 질서를 가져와 세상을 더 살 만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중심에서 밀려난 많은 인간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썼다.
또 "중심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사상가들이 말해왔다. 이 소설은 그 말들에, 내 말들을 덧붙이는 식으로 쓰였다"고 했다.
만약 소설 제목의 '광기'를 보고 작가의 초기작 '목화밭 엽기전'(2000) 같은 광기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할 수 있다. 소설 속 광기의 존재는 교양의 존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매춘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목화밭 엽기전'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의 간극 만큼 작가의 세계 역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316쪽. 1만3천원.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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