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청탁금지법 개정, 원래 취지는 흔들지 말아야(종합)
(서울=연합뉴스) 국민권익위원회가 27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이날 회의에선 공직자에게 제공 가능한 선물의 상한액을 농수축산품에 한해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10만 원으로 돼 있는 경조사비 상한액은 5만 원으로 줄일 것인지 등을 심의하며 격론을 벌였으나 반대 의견이 더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권익위는 전원위원회에서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한 뒤 당정협의를 거쳐 29일 대국민 보고대회를 통해 발표할 계획이었다.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이 권익위에서 무산됨에 따라 이른바 '3·5·10' 규정의 개정은 급제동이 걸릴 듯하다. 정부는 농수축산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덜어주기 위해 설 대목 이전에 이 규정을 개정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날 회의 분위기를 보면 시한을 정해 놓고 서두를 일은 아닌 듯하다.
청탁금지법은 불과 1년여 만에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부정한 청탁과 접대 문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법 덕분에 공직 사회에서 청탁과 접대가 눈에 띄게 줄고, 학부모들의 촌지 부담도 거의 사라졌다. 적어도 드러내놓고 청탁이나 접대를 할 수 없는 '청렴'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권익위가 스스로 시행령 개정 논의에 나선 것은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5·10만 원' 규정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따져봐야겠지만 화훼와 한우 농가 등 농수축산물 분야 매출이 크게 줄어 타격을 받은 것은 대체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권익위가 선물 상한액을 농수축산물에 한해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리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경조사비는 그 반대로 한도를 10만 원으로 정해 일반 직장인 등의 부담을 가중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경조사비 한도를 일괄적으로 5만 원으로 낮추거나, 공무원만 행동강령에 5만 원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넣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권익위 개정안은 당장 농수축산업계의 불만을 달랠 수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한우 농가는 그 정도로 부족하다며 이미 불만을 나타냈고, 구제 대상에서 빠진 외식업체나 공산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도 볼멘소리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구제 범위를 넓혔다가는 청탁금지법의 기본 틀마저 흔들 위험이 있어 권익위의 고민도 그만큼 깊었을 것 같다. 권익위가 식사비 접대 한도를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늘리려다 원안을 고수하기로 한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권익위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과 별도로, 설과 추석 등 명절에 주고받는 선물은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청탁금지법 적용 제외 대상을 규정한 8조3항의 사회 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의 범위에 설과 추석 등 명절에 주고받는 선물을 포함하자는 것이다. 선물 한도를 10만 원으로 높이는 시행령 개정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일 수 있다. 청탁금지법의 틀을 바꾸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4명꼴로 청탁금지법을 지금처럼 유지하거나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권익위의 청탁금지법 개정 시도가 불발한 것에도 이런 여론이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청탁금지법의 틀을 마련한 김영란 서강대 법률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한 강연에서 "3·5·10만 원 숫자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공직자는 식사·선물을 아예 받지 말라는 것이 원래 취지라고 강조했다. 청탁금지법은 부득이한 경우 이 한도 내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지 그 한도 내에서 마음껏 주고받으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은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3·5·10 규정 개정이 "청렴 방파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만큼 불가피한 현실을 반영해 고치더라도 법의 원래 취지는 지켜야 한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폭넓게 의견수렴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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