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대혼란' 예고…교사부담·과목쏠림·대입개편 난제
文정부 핵심 국정과제…고교서열화 해소·대입 개선 등 '도미노 개혁' 주목
교사 충원·인프라 확충 등 관건…"졸속 도입시 대혼란 불가피"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이재영 기자 = 교육부가 2022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정부의 초·중등 교육분야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장과 교수학습·평가 개선을 통해 고교교육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정부는 기대한다.
나아가 학교 내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서열화돼 있는 현행 고교체제 개편과 대입제도 개선도 뒷받침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교사의 가중되는 업무부담과 부족한 인프라, 대학입시에 유리한 과목으로 쏠림 현상 등 산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도입되면 학교 현장에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 필요과목 학생 스스로 선택…평가·졸업제도 모두 변화
고교학점제는 학점을 기준으로 학사제도가 설계·운영되며, 세부 운영 방식은 학교별 여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수단위를 학점으로 전환해 학력 취득을 위한 총 이수학점과 필수 이수학점 등을 제시하고, 필수 이수단위를 제외한 범위 안에서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수강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경우 총 이수단위는 204단위(1단위 = 50분 기준 17회 수업)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교과가 180단위, 창의적 체험활동이 24단위다. 교과 180단위 중 필수 이수단위(94단위)를 제외하고 자율편성단위(86단위) 안에서 자유롭게 과목 선택이 가능하다.
평가제도는 학점 취득을 위한 과목별 성취기준 설정, 수업 중 이뤄지는 교사별 평가, 과정 평가를 기본 전제로 한다.
학점제가 안착한 뒤에는 이수·미이수(F) 제도를 도입해 미이수 평가를 받으면 과목을 재이수(재수강)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졸업제도 또한 지금처럼 출석 일수를 기준으로 학년 진급이나 졸업이 획일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학점을 기준으로 양적·질적 요건을 따져 탄력적으로 결정된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고교교육 전반에 혁신적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자사고·외고·국제고, 일반고 등의 학교 간 수직 서열화가 평준화 체제를 기반으로 한 수평적 다양화로 변화하고, 학교 유형 다양화를 명분으로 한 학교 선택권도 과목 선택권 확대,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성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대입에서도 국·영·수 내신과 수능 중심에서 선택 교과와 자발적 학습 활동을 종합 평가하는 쪽으로 바뀌고, 정량화·서열화된 점수 기준은 잠재력과 역량에 대한 정성 평가로 옮겨갈 것으로 기대한다.
서열화된 고교 체제가 해소되면서 왜곡된 초·중학교 교육의 정상화도 이뤄질 것이라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 "초·중등교육 정상화…교육과정 전반 변화 촉발"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교학점제와 관련해 "자사고·외고·국제고와 일반고 고입 동시 실시 등 고교 체제 개편을 위한 3단계 로드맵과 함께 초·중등교육 혁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고교학점제 시행은 고교 입시를 비롯한 고교 체제 개편과 대입제도 개선의 연결고리이자 교육과정 전반의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교육부가 학점제 정착을 대입제도 단순화와 공정성 제고 등 종합적 제도 개선의 성패를 좌우할 요인으로 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고교학점제는 고교 성취평가제(내신 절대평가), 수능 절대평가 확대, 학교생활기록부종합전형(학종) 확대, 자사고·외고 폐지 등 주요 교육 현안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오로지 점수를 절대적 기준으로 줄세우기를 하는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소질, 희망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 취지를 살리려면 지금의 수능 제도를 비롯한 대입 제도 또한 손질이 불가피하다. 다양한 잠재력을 평가하는 학종 비중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른 공정성 논란을 막기 위한 대책 또한 더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 교사 업무부담 축소·인프라 확충 급선무
고교학점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려면 교사의 업무량 증가와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개설 과목이 늘어나면 교사의 수업과 평가 관련 부담도 당연히 늘어나게 된다.
또 다양한 수업을 위한 준비물 보관용 대형 사물함인 홈베이스, 교과별 교실, 진로활동실, 자율학습실, 진로·학업 상담공간 등 수요도 크게 늘어난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교사들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도록 교무행정팀 운영을 내실화하고 잡무를 줄이도록 행정적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또 필요한 시설을 증축하는 등 인프라 확충도 지원하고, 교육청 등 지역 공공기관과 대학의 유휴 공간을 공동 수업·실습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학교 밖 자원 활용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연구학교 운영을 통해 필요한 교원 수요와 연차적 충원 방안을 강구하고, 행정·재정적 필요사항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 "대입에 유리한 과목 쏠림 우려…도입에 신중해야"
고교학점제가 수업과 평가, 졸업 등 고교 교육과정 전반은 물론 물론 대학입시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치밀한 연구와 준비를 거쳐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교사 충원 등 물리적 인프라 확충 말고도 과목별 쏠림 현상 방지와 도농격차 해소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준비해야 할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주요 교원단체는 이런 점을 들어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육과정을 완전히 바꿔야 학점제 시행이 가능한 만큼 철저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총은 "교육여건 조성, 내신평가·대입제도 정비, 교육에 있어 도농격차 축소 등 학점제 시행을 위한 사전 과제가 너무 많다"며 "학교 현장에 혼란이 없도록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총이 지난 6월 전국 초·중·고 교사 2천77명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여론조사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에 긍정적인 답변은 42.6%에 그쳤고 47.4%가 부정적이었다.
도입에 부정적인 이유로는 대입에 유리한 과목으로 쏠릴 가능성(43.2%), 다양한 수업에 필요한 교과목·교사·학교시설 부족(34.8%) 등이 많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학점제는 중등교육 전체를 바꾸는 정책이기 때문에 아이디어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당장 내년부터 예정된 연구·선도학교 100곳 운영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전교조는 "학교와 교사의 과목 개설권 범위와 낙제 제도 도입 여부 등 기본개념도 정립돼 있지 않다"며 "학점제 도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국가교육회의가 출범하면 충분한 논의를 거쳐 도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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