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일본군 위안부 한국 여성 600여명 추산"
여성정책연구원 주최 심포지엄서 위안부 기록물 발굴 성과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시다 = "센토사 섬으로 끌려온 대다수의 위안부는 한국인이거나 인도네시아인이었다. 이들은 현지에서 간호사나 웨이트리스로 일할 것이라는 말에 속아 끌려왔다."
지난 1년간 국내외 위안부 기록물 발굴 성과를 공개하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발굴·정리·해제 사업' 심포지엄이 오는 24일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오영인 동국대학교 인간과미래 연구소 책임연구원이 국내외에서 발굴한 각종 자료를 토대로 싱가포르 내 일본군 위안소 운영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보고서는 1998년 일본에서 발간된 책 '세계 경제에서 일본과 싱가포르'를 인용,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싱가포르에만 600여 명의 한국인 여성이 거주했으며 대다수가 위안부였다"고 밝힌다. 이는 싱가포르에 동원된 한국인 위안부의 구체적 숫자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오 연구원은 설명했다.
싱가포르 내 일본군 위안소는 차이나타운 내 부킷 파소 로드, 센토사 섬 등 여섯 군데에 설치돼 운영됐음이 각국의 연구자들에 의해 확인됐다.
이외에 에메랄드 힐 등 4곳에서 위안소가 운영된 것이 싱가포르 국립문서보관소의 구술자료를 통해 드러났으며, 일본식 주점인 요정이 현지 브로커에 의해 위안소로 활용되었다는 증거 자료도 발견됐다.
당시 위안부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다카시 후지와는 구술자료에서 "1942년 9월 혹은 10월에 대략 12명의 한국인 소녀들이 센토사 섬으로 끌려왔다"며 한국인 소녀들은 싱가포르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한 레스토랑에서 일한다는 일본인 성매매업자에게 속아서 오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다.
로우 레이 렝은 "싱가포르 켄힐 로드의 위안소 앞에는 늘 일본 군인들이 50명 정도 줄을 서서 들어가려고 기다렸는데, 영화관 줄 같아 굉장히 이상했다"고 회상했다.
말레이시아에 있던 위안소에 대한 증언도 있다. 일본군이었던 시모자키는 말레이시아 조홀 바루에 있던 위안소에 대해 "일본 여성들은 2층으로, 그 밖의 여성들은 1층 방으로 배정받았다. 1층에 배정받은 조선 여성들은 차별을 당했다"고 말했다.
1945년 9월 일본군의 항복 이후 싱가포르 내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도 출간됐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리우 캉은 1946년 발간한 화집 '찹 수이: 일본 점령기 말라야에서 일어난 여러 끔찍한 사건 선별집'에서 "위안소가 일본군에 필수적인 부속품이었으며, 일본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존의 매춘부를 다 모집한 후 장교와 일반 군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각각의 등급으로 나누는 것이었다"고 적었다.
오 책임연구원은 "싱가포르 국립문서보관소 구술사 센터가 역사 보존을 위해 4천100여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구술사 자료 가운데 총 52건이 한국인을 포함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것"이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동남아 지역 위안부 기록 발굴의 계기를 마련하고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닌 현지인의 시선을 통해 역사적 객관성을 확보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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