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낮은 수위 반발…관망모드 이어갈까
가장 격이 낮은 '외무성 대변인 문답'으로 반응…내용도 원칙적 수준에 그쳐
'상징적' 조치라는 점 고려했을 듯…겨울철 기술적 미비도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북한이 미국 정부의 9년 만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반발하면서도 그 수위는 예상보다 낮춰 앞으로 보일 태도가 주목된다.
북한은 22일 밤 외무성 대변인의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엄중한 도발이며 난폭한 침해"라고 규정하며 "우리를 건드린 저들의 행위가 초래할 후과(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핵은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미국의 극악무도한 대조선 적대시정책과 우리에 대한 핵위협에 대처하여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지키기 위한 억제력"이라며 "미국의 대조선 적대행위가 계속되는 한 우리의 억제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움직임에 대해 그간 "가혹한 대가"를 거론하며 위협해왔기 때문에 재지정에 대한 반발은 사실상 예견돼왔다.
따라서 북한의 반발 여부보다는 수위가 어느 정도일지가 더 주목됐는데, 발표 형식과 내용을 뜯어보면 우려했던 것보다 낮은 수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형식 면에서 '외무성 대변인의 기자와의 문답'은 북한이 대외관계와 관련된 사안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때 택하는 형식 중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통상 '정부 성명'이 가장 격이 높고, 이어 외무성 차원에서는 성명, 대변인 성명, 담화, 대변인 담화,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등의 순으로 격이 낮아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내용상으로도 핵·미사일 고도화를 뜻하는 억제력 강화를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보복 조치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칙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이처럼 낮은 수위로 대응한 데는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실질적인 제재 효과는 거의 없는 상징적인 조치에 가깝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상대적으로 실효성이 있는 유엔 안보리 제재에 대해선 거의 예외 없이 무력시위로 대응해 왔다.
한편에선 미국에서 더는 군사옵션이 거론되지 않으면서 북한의 반응도 수위가 조절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이 군사옵션 얘기는 꺼내지 않고 있지만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수시로 출동시키는 상황에서 미국을 군사적으로 자극해봐야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절제된 반응으로 볼 때 북한이 당장 군사적 도발로 대응하기보다는 당분간은 주변 정세를 살피면서 관망모드를 이어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정부가 내년 2∼3월에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기간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겨울에는 미사일 발사 시험 등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어 북한이 평창올림픽 때까지는 전술적으로 분위기를 맞춰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부적으로는 핵·미사일 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북한은 최근까지도 미사일 엔진 실험을 수차례 진행하는 등 두 달 이상 도발을 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관련 동향은 지속해서 포착되고 있다.
북한이 앞으로의 전략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입장에선 핵보유국 선언을 한 뒤에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 나을지, 핵·미사일 완성 전에 이를 카드로 협상에 나오는 게 나을지 판단이 아직 서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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