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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거장 필립 로스가 바라본 아버지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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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거장 필립 로스가 바라본 아버지의 삶과 죽음

에세이 '아버지의 유산'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미국 작가 필립 로스(84)의 에세이 '아버지의 유산'(문학동네, 원제 'Patrimony')이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중년 무렵의 필립 로스가 아버지의 말년과 뇌종양 투병 과정을 지켜보며 쓴 에세이로, 1992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미국의 목가', '에브리맨', '휴먼 스테인' 등 소설과 함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죽음과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 근원적 실존 문제를 다루면서 그에 대응하는 기품있는 태도에 관해서도 논한다.

그의 아버지는 여든여섯이 되는 해에 뇌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이미 수년간 몸집을 키워 시력까지 갉아먹은 이 종양에 맞서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열 시간 안팎의 대수술을 하는 것뿐이다. 문제는 수술하고서도 몸 상태가 전처럼 회복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 고령의 노인이 감수해야 할 위험으로는 너무 크다. 그렇다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종양이 얼마나 빨리 몸을 잠식해 아버지의 생명을 앗아갈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아버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때때로 침울해질지언정 생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는다. 그는 좌절할 만한 순간에도 전의를 불태우며 "다시 살기 시작해야겠어"라고 말한다.

로스는 아버지가 미국에서 유대인 이민자로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힘들게 일하며 평생 전투적인 삶을 살아온 것도 모자라 또 죽음 앞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애통해 한다. 동시에 그 싸움을 평생 고수해온 한결같은 고집과 성실함으로 대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비로소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이민자 거리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오. 나는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고,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고, 한 번도 용기를 잃거나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소. (중략) 그런 내가 요구하고 있는 건 정말 내가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는 거요- 팔십육 년을 한 번 더!" (본문 158쪽)

또 병들어가는 아버지가 한 연약한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때,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와의 끈끈한 결속을 느낀다.

"치워야 하는 것이니까 아버지의 똥을 치우지만, 치우고 난 뒤에는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느껴졌다. (중략)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왜 이것이 옳고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대로인지 그렇게 분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유산이었다." (본문 209쪽)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활달한 개성을 그대로 전해주는 생동감 있는 대화들과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이 어우러져 읽는 재미가 크다. 작가의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정영목 옮김. 284쪽. 1만3천800원.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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