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도, 계산도 어려워"…일본 10~20대 문맹자 꽤 있다
가정형편 때문 의무교육 제대로 못받아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일본에 문맹자, 그것도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 문맹자가 꽤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성인이 된 사람들이다. 읽기, 쓰기, 계산은 일찍부터 일본 교육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 일본 헌법도 전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초중학교 의무교육조차 받지 못한 젊은이들의 존재가 언론보도로 확인됐다.
"넓이 단위인 ㎡나 액체의 양을 재는 단위인 ℓ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30% 할인이나 20% 깎은 값을 계산하지 못한다". "한자를 읽지 못해 약을 사도 먹는 방법을 모른다"
이런 문맹 젊은이들의 실태를 NHK가 21일 특집기사로 보도했다.
히가시니혼(東日本) 지역에 사는 19세의 고스케(가명)군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지막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한글의 기억, 니은에 해당하는 히라가나조차 제대로 쓰지 못한다. 한자로 쓸 수 있는 건 자기 이름과 주소뿐이다. 곱하기나 나누기는 아예 못한다.
고스케는 작년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업무보고서를 쓰지 못해 상사에게서 질책을 받았다. 집 벽에 걸린 달력 여백에 배달을 왔으나 부재중이어서 그냥 간다는 뜻의 "부재(不在)"를 몇 번이고 써보고 연습한 흔적이 남아 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해 한 달여 만에 배달일을 그만뒀다.
고스케는 모자가정 출신이다. 어머니는 비정규직을 전전했으나 몇 가지 병을 앓게 되면서 일할 수 없게 돼 지금은 정부의 생활보장대책에 의존해 살고 있다. 6살 위인 형의 폭력에 시달린 고스케는 매일 아침 형의 눈치를 보는 데 지쳐 학교에 다닐 의욕을 잃고 말았다. 처음 몇 번은 학교 선생님이나 행정담당자가 찾아 왔으나 나중에는 아무도 오지 않게 됐다고 한다. "장래" 따위는 생각조차 못 해본 채 배우지 못한 채로 어른이 돼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오사카(大阪)에 사는 21세의 히토미(가명)도 의무교육을 받지 못했다. 모자가정에서 자란 히토미는 초등학교 입학 직후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간호와 가사에 매달리느라 학교를 자주 결석했다.
4학년 때 빚 때문에 전학 수속을 밟지 못한 채 이사하는 바람에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됐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이력서에 아무것도 쓸 게 없다.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이 든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모에 신경을 쓸 나이지만 미장원에는 이런저런 신상 문제에 관해 질문을 받는 게 두려워 가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는 계산기를 이용해 살 물건값을 미리 계산해 돈을 낸다. 암산을 못 하기 때문에 계산대에서 돈이 모자라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NHK가 전국 800여 개의 극빈자 자립지원상담센터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응답률 40.7%)를 시행한 결과 "의무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젊은이가 597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읽고 쓰기에 곤란을 겪는 사람이 78명, 계산을 못 하는 사람이 69명이었다. "대인관계가 두렵다"는 사람은 208명이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이유로는 "이지메(집단괴롭힘)"나 "본인의 장애"가 각각 101건, "부모의 병환"이 71건, "부모의 몰이해"와 "학대"가 각각 67건, "가난"이 51건으로 나타났다. 보호자의 일이나 질병, 빈곤 등의 가정환경이 "학습빈곤"으로 이어진 셈이다.
"학습빈곤"에 대처하려는 지자체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히로시마(廣島) 현 후쿠야마(福山)시는 "생활보호대상자나 한 부모 가정" 정보를 교육위원회와 시 담당 부서가 공유해 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찾아내 돕고 있다.
시 담당 직원이 한집, 한집 방문해 질병으로 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부모를 대신해 아침에 깨워 주거나 등교를 재촉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후쿠야마시는 현재 71명에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앞으로 지원요원을 늘려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올해 2월부터 모든 국민의 배울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제정한 "교육기회확보법" 시행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야간중학을 설치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현재 야간 중학교를 설치한 광역 지자체는 8개지만 고치(高知) 현과 구마모토(熊本) 현 등 6개 현과 74개 시초손(市町村)이 설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lhy5018@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