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곳에 전용 화장실을?"…운영비 못받는 '장애인야학'
옥천 '해뜨는 학교' 시설기준 미달 돼 지원대상서 제외
교육당국 "운영비 받으려면 시설 등록하고 남녀 장애인 화장실 갖춰야"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의 삼양초등학교 옆 골목 안에 '해뜨는 학교'라는 간판을 내건 아담한 교육시설이 있다. 정규교육에서 소외된 중증 장애인들이 모여 뒤늦은 향학열을 불태우는 야학(평생교육시설)이다.
말이 교육시설이지 내부는 어른 10여명이 들어서기도 힘들 정도의 비좁은 강의실과 손바닥만 한 사무공간이 전부다.
이곳에 20여명의 중증 장애인이 드나들면서 한글을 배우고,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20∼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학생 중에는 학교 문턱조차 못 밟아 글을 깨우치지 못한 문맹자도 여러 명 있다.
이곳은 충북도와 옥천군으로부터 한해 1천400만원의 장애인 교육지원 사업비를 지원받는다. 이나마 지난해부터 시작된 혜택이다. 그러나 한 달 120만원도 안 되는 적은 돈이다 보니 건물 임차료와 전기·수도요금 등을 내기도 빠듯하다.
지체장애 2급으로, 시설운영을 맡는 최명호(44) 교장은 "장애인 교사 등의 재능기부를 받아 어렵사리 살림을 꾸리고 있지만, 모든 게 부족한 상황"이라며 "인건비가 모자라 청각·지적 장애인을 위한 수화와 미술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최 교장은 최근 충북도교육청에 운영비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정식 등록된 평생교육시설이 아니어서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충북지역에는 이곳 말고도 청주 '다사리 학교'와 충주 '열린 학교' 등 장애인야학 2곳이 더 있다. 이들은 도교육청으로부터 한 해 4천만원 안팎의 운영비(평생교육시설 지원비)를 지원받는다.
'해뜨는 학교'가 지원에서 빠진 이유는 교육 당국이 정한 시설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생교육시설로 인정받으려면 49.5㎡ 이상의 학습시설과 기본 도서량을 구비해야 한다. 종사자 1명은 평생교육사 자격을 가져야 하고, 전문인력 확보도 필수다.
이런 조건에 앞서 '해뜨는 학교'에 닥친 문제는 화장실이다.
도교육청은 장애인 시설이므로 남녀 장애인용 화장실을 따로 갖추지 않으면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장을 점검한 한 장학관은 이 야학이 처한 현실과 화장실 문제 등을 자신의 SNS에 올려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곳은 시설이 비좁아 장애인용 화장실을 따로 설치할 공간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른 한 명이 간신히 들어설 만한 비좁은 화장실을 남녀가 함께 쓴다. 휠체어조차 들어갈 수 없는 구조다.
돈 한 푼이 아쉬운 야학 입장에서는 갑자기 불거진 화장실 문제로 떼려던 혹을 하나 더 붙이는 꼴이 됐다.
최 교장은 "장애인용 화장실을 갖추려면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전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설령 공간이 확보되더라도 1천여만원에 이르는 공사비 조달도 문제"라고 막막한 처지를 한탄했다.
교육 당국은 평생교육시설로 등록하는 게 급하다고 지적한다. 예산지원을 받으려면 무조건 제도권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옥천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평생교육시설로 등록하려면 최소한의 시설과 인력을 갖춰져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이 기준을 충족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며 "현장을 점검한 뒤 정확한 진단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이 야학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 안타까운 사정을 미처 알지 못했다"며 "뒤늦게나마 상황을 확인했으니, 장애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행정당국과 머리를 맞대 지원방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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