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란포비아' 높여 젊은 왕세자 차기왕권 안정 도모
모하마드 왕세자 왕권 장악 때까지 대이란 적대 계속될 듯
대이란 적대 선언 트럼프 정부와 '공조'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른바 '이란 포비아'(이란에 대한 공포증)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당장 무력충돌도 마다치 않을 기세다.
이란이 최근 군사적 위협 수위를 별안간 높인 것도 아니고 친이란 무장세력을 지원한 것 역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우디발 '지진파'는 여러 측면으로 해석되지만 사우디 국내적으로는 1953년 2대 사우드 국왕부터 이어진 형세상속이 부자상속으로 바뀌는 시점에 차기 국왕의 왕권 안정을 도모하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모하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나이(32세)를 고려할 때 역대 최연소 사우디 국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친위 세력이 두텁지 못하고 왕권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왕위 계승 서열을 손자 세대로 넘기면서 사우디는 건국 이후 이어진 석유 중심의 지배 구조에 과감히 손대 현대 국가로 변환을 시도하려 한다. 사우디의 불확실성이 커진 셈이다.
사우디 왕정은 석유에서 얻은 막대한 재력과 이권을 왕가와 유력 가문에 적절히 분배하는 방식으로 안정을 유지해 왔다.
사회·문화 분야는 엄격한 수니 이슬람 원리주의(와하비즘)에 기본을 둬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됐다.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이런 경직되고 전근대적인 경제·사회 구조를 바꾸기로 했고, 실제로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여성 권리 향상, 대규모 외자 유치 등 획기적인 개혁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면서 군과 국영회사를 장악해 왕실 안에서 기득권을 누린 왕자와 유력 가문 인사를 숙청, 내부 경쟁자와 반개혁 세력을 진압했다.
현재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강공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남은 세력은 종교계와 제다를 중심으로 한 상인들이라는 게 사우디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종교계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집단이다. 알사우드 가문과 함께 사우디를 건국하고 지탱한 다른 한 축일 뿐 아니라, 이슬람 종주국으로서 위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왕가나 기업인처럼 부패 혐의로 몰아 단칼에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종교계가 지지하지 않으면 젊은 차기 국왕이 될 왕세자의 입지는 불안해질 수 있다.
여기서 사우디의 대이란 적대 공세의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란이라는 이견 없는 공적의 위협을 부각함으로써 내부 종교계의 '새로운 사우디'에 대한 반발과 불만을 국외로 배출할 수 있어서다.
이런 점에서 사우디와 이란의 긴장은 적어도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왕위에 올라 내부의 경쟁 세력을 압도해 왕권이 안정됐다고 확신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동 내 역학 구도로 보면 사우디는 중동 여러 나라에 걸친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차단해 이란 핵협상 타결, 이슬람국가(IS) 격퇴 과정에서 다소 열세였던 국면을 만회하는 계산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는 그간 오일 달러를 원동력으로 '조용한 배후 외교'를 유지해 온 탓에 역내 분쟁에 물리적으로 직접 관여한 이란에 표면상 밀리는 것처럼 보인 게 사실이다.
이란에 역내 파워 게임에서 밀린다면 사우디 왕권의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예멘 내전 개입, 카타르 단교, 이라크와 관계 개선, 레바논 압박 등 살만 국왕 즉위 뒤 2년여간 사우디의 행보 역시 차기 국왕의 '새로운 사우디'를 향한 선언이다.
이란을 '거악'으로 규정, 전선을 분명히 하면 전통적인 친사우디 진영인 아랍 수니파를 규합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사우디는 19일 아랍연맹 긴급회의를 소집해 이란에 대한 적대를 다시 한 번 고조했다. 아랍연맹은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 수니파 국가의 모임이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아랍권에 대한 이란의 내정 간섭에 아랍 국가들이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긴급히 회의 소집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친이란 예멘 반군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예로 들면서 "헤즈볼라, 후티와 같은 대리자를 통한 이란의 야만적인 공격에 침묵한다면 (이란의) 탄도미사일에서 아랍 국가의 어떤 수도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위기감을 높였다.
사우디가 중동의 판세 흔들기를 시도한 출발점은 5월 사우디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의 '대이란 적대 독트린'으로 볼 수 있다.
사우디는 지난해 1월 이란과 단교하면서 긴장이 감돌았지만 당시 이란 핵합의 이행을 눈앞에 둔 버락 오바마 미 정부의 제동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못했다.
정권 교체된 미 정부의 이란 적대 정책과 핵합의 반대가 확인되자 사우디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중동 전체를 전쟁으로 밀어 넣는 사우디와 이란의 군사적인 직접 충돌은 가능성이 작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대신 레바논, 이라크, 바레인, 예멘 등에서 양국의 외교적 대리전이 상당히 장기간 지속하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동의 정세 불안은 유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경제적 측면에선 손해 보는 일도 아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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