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만만 M&A 큰손' 中 HNA그룹 어쩌다 궁지에 몰렸나
문어발식 확장에 금융기법 동원…지배구조 의문도 여전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공격적으로 해외 기업 사냥에 나섰던 중국 하이항(海航·HNA) 그룹이 궁지에 몰린 것은 애덤 탄 최고경영자(CEO)의 과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19일 보도했다.
HNA 그룹은 2015년 초부터 80건이 넘는 해외 기업과 자산을 사들였으며 이에 쏟아부은 자금은 400억 달러를 상회한다.
도이체방크의 지분과 힐튼 호텔 체인, 앤서니 스카라무치 전 백악관 공보실장의 투자회사였던 스카이 브리지 캐피털 등이 이 기간에 속속 HNA그룹의 수중에 들어갔다.
회사 사정을 잘 아는 이들에 따르면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와 견줄 만한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 HNA그룹이 품은 야심이었다.
하지만 규제 당국들이 제동을 걸고 월 스트리트에서도 의구심을 품으면서 HAN그룹의 야심은 벽에 부딪히고 있다. 최근 수주일간 차입비용이 급등하면서 HNA그룹의 자금 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애덤 탄 CEO는 지난해 여름 한 측근에게 회사가 너무 빨리 커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탄 CEO 본인이 주의를 소홀히 한 탓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같은 일부 신용평가사들은 HNA 그룹이 인수한 기업들에 충격이 미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HNA그룹이 피인수 기업들이 보유한 자금에 손을 대 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3일 중국 규제 당국은 해외 기업 인수가 역외 자회사를 통해 이뤄질 경우에는 승인을 받도록 조치했다. HNA그룹 등이 종종 역외 자회사를 통해 M&A에 나선 것을 겨냥한 것이다.
그룹이 발표한 실적 자료에 따르면 6월 30일 현재 총자산은 1조2천100억 위안(미화 1천780억 달러)로 2016년 말의 1조200억 달러를 상회하고 올해 상반기의 매출은 2천720억 위안으로 지난해 하반기 대비 92%가 늘어났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의 순이익은 10% 가까이 줄어든 8억1천250만 위안에 그쳤다. HNA그룹은 총부채가 1천억 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하면서 이를 축소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상반기 실적 자료를 보면 차입비용이 급등하면서 회사의 재무비용은 2배 이상 늘어났다. 그 충격을 견뎌내고 과연 그룹을 존속시킬 수 있을지가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신용평가사들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경영진들은 내외부 인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10월의 중국 공산당 대회까지는 새로운 대형 인수합병(M&A)을 관망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M&A 활동은 재개되지 않고 있고 M&A에 관여했던 직원들 일부는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이달 초 HNA그룹의 한 자회사는 1년 이하의 단기 자금 3억 달러를 빌리는데 8.875%의 이자를 지불해야 했다. 정크본드 등급에 속하는 중국 부동산 개발회사가 5.5%의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소식통은 지난 4월 HNA그룹은 홍콩의 자산운용사 밸류 파트너스를 인수하기 위해 한 은행으로부터 8~9% 금리로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해당 은행은 15%에 근접한 금리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스카이브리지 캐피털 인수와 관련해 애덤 탄 CEO가 수주일 전부터 계약이 제대로 마무리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HNA그룹은 중국 민항국 출신의 천펑(陳峰)과 왕젠(王健) 두 사람이 공동으로 창업한 지방 항공사가 모태다. 세인트존스 대학에서 MBA를 받고 하버드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한 탄 CEO는 1990년대초 HNA그룹에 입사해 사세 확장을 주도했다.
당초 HNA 그룹은 공항과 호텔, 물류, 교통 회사들을 사들이면서 사세 확장에 가속도를 붙였고 이어 보험과 선물중개회사, 클라우드 컴퓨팅, 원자재 중개, 석유 저장 등의 사업에도 진출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난해 HNA그룹이 M&A에 한창 열을 올릴 무렵에 내부 긴장도 확대되고 있었다. 공동창업자인 천펑은 항공과 물류, 관광 부문에 집중하길 원했다는 것이다.
반면 천펑 밑에서 오랫동안 부회장을 맡다가 현재는 공동 회장이 된 왕젠은 HNA그룹이 다양한 업종에서 지분을 취득하는 투자회사의 역할을 맡을 것을 주장했고 탄 CEO가 결국 왕젠의 편에 섰다는 것이 이들 소식통의 전언이다.
HNA그룹의 기업사냥은 강도를 높여갔다.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HNA그룹은 힐튼 월드와이드 홀딩스의 지분 25%를 65억 달러에 사들이고 CIT그룹의 항공기 리스 사업부를 40억 달러에 인수하는 대형 계약을 잇따라 발표했다.
HNA그룹의 전략을 잘 아는 이들은 경영진이 수익성이 있는 기업 대신 포천 500대 기업에서 빨리 순위를 높일 수 있도록 매출액이 큰 기업을 인수하는 쪽에 치중했으며 탄 CEO는 자회사들에 지분 인수를 독려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HNA그룹이 추가 인수에 나서기 위해 담보로 삼을 수 있는 기업들을 목표로 삼았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들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 이런 전략은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HNA그룹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서 흔히 보는 복잡한 금융기법도 동원했다. 도이체방크의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28억 달러의 대출을 받고 일련의 복잡한 파생금융 계약을 맺은 것이 단적인 사례다.
힐튼 호텔 체인을 인수할 때는 30억 달러를 보충하기 위해 해당 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에도 의존했다. 이런 거래도 담보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 은행 측으로부터 추가 증거금을 요구받을 위험이 도사린다.
HNA그룹은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형태로 몇몇 거래를 성사시켰다. 일례로 홍콩의 카이탁(啓德) 공항이 보유한 부지를 인수하는 데 시장 가격보다 88%나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HNA 경영진들은 이런 복잡한 기법을 사용하는데 대해 스마트 투자자가 되려 노력하는 것이며 리스크를 제한할 조치도 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소유와 지배구조의 불투명성도 문제다. 해외에 도피한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가 HNA그룹에 정치권 연줄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HNA그룹 측은 이를 잠재우기 위해 주주 현황을 전격 공개했다.
HNA그룹에 따르면 미국 뉴욕주에 등록된 츠항(慈航)기금회가 29.5%의 지분을 소유해 최대주주고 탄 CEO는 2.95%의 지분을 가진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M&A가 활발하게 이뤄질 당시의 주주 현황, 주식이 어떻게 이전됐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츠항기금회의 역할도 의문투성이다.
소식통들은 HNA그룹 계열사의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던 골드만삭스가 업무를 중단했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도 발을 뺐으며 그 이유는 HNA의 소유구조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HNA그룹은 JP모건과 골드만삭스를 포함한 대형 은행들을 접촉해 소유구조에 관한 의문에 답해주고 있다. 한 소식통은 그러나 이들로부터 지금까지 받은 답변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음에도 HNA 그룹 경영진은 여전히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국제적 명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과시한다. 탄 CEO는 올여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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