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취임 100일 박경서 한적 회장 "한반도 평화정착 가장 중요"
"한적이 역할 하겠다…남북 적십자 인도주의 프로그램 공동 추진해야"
"국민이 공동소유하는 적십자 만들 것…선진국형 적십자 만들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홍국기 기자 = 박경서 대한적십자사(한적) 회장은 여건이 조성되고 적절한 시기가 된다면 직접 방북해 이산가족 문제와 인도적 지원, 협력사업 등을 풀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8월 취임한 박 회장은 취임 100일을 앞두고 지난 16일 서울 중구 소파로 한적 본사에서 가진 연합뉴스·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한적의 역할 등 재임기간 추진 사업과 비전 등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일문일답.
-- 취임 후 100일이 지났다. 취임사에서 누차 동북아시아·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을 강조했는데.
▲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게 하는데 한적이 역할을 하겠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한적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한적은 남북대화와 교류를 주도한 경험을 가진 유일무이한 인도주의 기관이다. 또 국제적십자사연맹(IFRC)뿐 아니라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강 적십자사와의 긴밀한 협력과 교류를 확대하겠다.
-- 선진적십자사로의 도약에 대한 포부도 언급했는데 구체적인 비전과 계획은 무엇인가. 모델로 삼는 적십자사나 기관이 있는가.
▲ 선진국형 적십자로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다. 국민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적십자사를 만들고 싶다. 스위스 국민은 스위스적십자사에 대한 긍지를 느끼고, 어릴 때부터 '적십자사 정신'이란 것이 몸에 배어 있다. 모든 국민이 긍지를 느끼는 기관이 되려면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어서는 안 된다.
-- 한적의 향후 재원조성 방법과 재정 운영 계획은.
▲ 연간 500억 원 수준의 적십자회비 모금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참신하고 다양한 시도를 전개할 계획이다. 이른둥이, 국내 난민 등 주요 이슈를 주제로 참여형 모금 상품을 출시하고, 온라인상에서 스토리 펀딩을 전개해 더욱 많은 사람이 적십자 인도주의 사업에 대해 공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재임 기간 중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은 무엇인지. 한적이 소중한 공공자산으로 지속적인 신뢰와 공감을 받으려면 어떤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나.
▲ 한반도 평화정착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적인 것을 초월해야 한다. 남북 적십자사가 인도주의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적십자회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적십자정신은 뚜렷한 것 같다. 지난 9년간은 두 기관이 많은 것을 못했다. 지금은 남북 적십자가 IFRC를 통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직접 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해 해보려고 한다. 내년부터는 한걸음 두걸음 나아가서 확산되리라 생각한다.
--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제21차 국제적십자사연맹 총회에서 북측과의 접촉이 있었나.
▲ 북측과의 공식적인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백용호 북한 적십자회 부위원장과 동아시아지도자 오찬 자리를 함께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백 부위원장은 북한적십자회가 IFRC 주도의 대북지원 국제공조체계인 CAS(협력합의전략, Cooperative Agreement Strategy)를 통한 지역사회 역량 강화에 대한 활동과 성과를 설명했다. 또 지난해 발생한 홍수 피해를 아직 복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 한적의 대북지원사업은 어떤 것인가.
▲ 한적은 2015년 마을단위 통합지원을 골자로 하는 대북 CAS 시범사업에 3억7천780만원을 지원했다. 또 지난해와 올해 북한 함경도 홍수지원에 각각 2억2천943만원, 1억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4억원을 지원하기로 계획이 잡혀 있었는데 제가 북한 6차 핵실험을 전후해 취임해서 보류된 상황이다. 언젠가 모든 여건이 잘 되면 이 돈도 보내려고 한다. 또 때가 되면 평양에 가서 의사결정 구조에 있는 분을 만나 남북 적십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합의해서 북한 적십자사를 통해서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 지금 당장 어렵더라도 향후 남북관계가 풀리면 추진하고자 하는 대북지원 방안은?
▲ IFRC를 통한 사업과 남북한이 직접 하는 협력, 이 두 가지를 같이 육성하면서 가려고 한다. 첫째는 건강·보건 문제 개선에 집중하고 싶다. 이건 적십자정신에도 가장 부합하는 일이다. 북한의 10세 이하 어린이들은 남한 아이들보다 키가 10㎝나 작고, 몸무게는 10∼20㎏ 적게 나가는데 이들은 우리가 미래에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또 우리의 혈액은행과 같은 시스템 기법을 전수하고 혈액원 가동 등 북한의 보건시스템 선진화도 도와주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마을 단위의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 정부는 지난 7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적십자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방안을 갖고 있나. 또 북한은 집단 탈북 여종업원 송환을 이산가족 상봉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데.
▲ 주위여건이 허락되고 이때라는 판단이 들면 평양에 갈 것이다. 북한 적십자회 위원장도 만나서 이산가족 문제도 풀 것이다. 북한이 12명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데 제가 취임한 지 100일도 안 됐고 이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라 아직 잘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된 사건인지 보려고 한다.
--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인도적 분야의 협력을 제공하는 '한반도 프라이카우프' 방식의 적용 방안도 검토한다는데.
▲ 프라이카우프, 독일말로 '자유를 산다'는 뜻이다. 자유를 산다는 말 그 자체는 좋은 데 당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서독의 교회가 앞장서서 헌금을 받아 동독 측에 건넬 때, 당시 모든 언론과 교회 측이 함구했다. 실제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게 된 시기도, 통일된 다음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는 굉장히 나이브한 어프로치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안보, 경제협력, 인권 3개의 바스켓(과제군) 각각의 문제를 다루는 '21세기형 헬싱키프로세스'를 하는 것이 낫다. 이것이 한반도 문제에도 맞고,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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