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군축합의 깨고 '유럽겨냥' 미사일 배치…미국 "우리도 개발"
러시아가 새 크루즈미사일 배치하자 미국도 개발 착수…핵무장 경쟁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러시아가 미국과의 핵무기 감축 협약에서 금지하는 크루즈 미사일을 만들어 실전 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도 러시아와 똑같은 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냉전 시대 이후 다시 미-러 간 핵무장 레이스에 불이 붙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정보기관들은 지난 2월 러시아가 새로운 지상배치 크루즈 미사일을 실제 배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위협할 수 있는 이 미사일의 배치는 미국과 러시아가 1987년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의 위반이라고 미 당국은 보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서명한 이 조약은 사거리 500∼5천500㎞의 핵 또는 재래식 미사일의 제조와 시험, 배치를 금지한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인 작년 11월 러시아 측에 새로운 크루즈 미사일이 조약 위반이라는 점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실전 배치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현 행정부는 미국도 똑같이 새로운 지상배치 크루즈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는 것으로 맞불을 놨다.
미 의회는 국방부가 5천800만 달러(약 635억 원)의 예산을 사용해 재래식 '지상 이동형' 크루즈 미사일을 연구·개발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내용의 '국방정책법'을 통과시켰다. 백악관은 몇 주 내로 이 법안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WSJ가 보도했다.
다만 미국의 새 미사일 개발은 러시아가 INF를 준수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며 러시아가 물러설 경우 미국도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거리 미사일을 단지 연구·개발하는 것은 INF 위반이 아니지만, 실제로 제조해 배치하면 위반이 된다고 이들 매체는 전했다.
짐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 9일 브뤼셀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방장관들과 만나 "우리의 노력은 러시아가 조약을 준수하도록 되돌리려는 것이지 우리가 조약에서 발을 빼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군축 합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를 압박하되 INF를 어기지는 않겠다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이지만, 결국 러시아가 물러서지 않고 '치킨게임'을 벌일 경우 양국이 군비 경쟁을 재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벤 카딘 의원(메릴랜드)은 "우리가 갈등을 빚을 수 있는 무언가(미사일)를 개발함으로써 갈등을 가속화하는 데 찬성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WP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도 "트럼프 행정부는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하지만 실패할 경우 트럼프는 결정에 직면할 것이다. 깨진 조약을 계속 지킬 것이냐, 아니면 핵무장 레이스를 감수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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