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세습'에 발목 잡힌 최장기·최고령 독재자 무가베(종합)
올해 93세, 37년간 짐바브웨 통치…독립투사에서 독재자로 전락
"100세까지 통치" 공언…부인에 권력 넘겨주려다 군부 반발 초래
북한이 훈련한 정예부대 동원해 숙청작업 전개…2만명 희생당해
(서울·나이로비=연합뉴스) 김정은 기자·우만권 통신원 =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권력에서 쫓겨날 위기를 맞은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은 세계 최장기, 최고령 집권자다.
올해 93세인 무가베 대통령은 짐바브웨 독립투사 출신으로, 이 나라가 영국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1980년 56세에 초대 총리 자리에 오른 이후 37년째 집권하고 있다. 왕이 아닌 인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권좌를 지켜온 최고령 집권자다.
무가베는 2015년 12월 전당대회에서 2018년 대선 후보로 또 한 번 확정된 상태다. 2018년 대선에서 다시 당선될 경우 그의 임기는 99세에 끝나게 돼 있었다. 무가베는 100세까지 통치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AFP는 15일(현지시간) 집권여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이 최근 무가베를 오랜 기간 권좌에 머물도록 도운 군부와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의 정치적 노욕도 그 명운을 다하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무가베는 애초 로데지아로 불리던 과거 식민지 시절의 영국인들을 몰아낸 해방전사로 칭송을 받았지만, 곧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국가 경제를 파탄에 빠트린 '독재자'로 지목됐다.
짐바브웨 국민은 급격한 물가상승과 만성적인 실업, 빈곤으로 나라를 떠나고 있지만, 무가베는 호화 생일잔치를 벌이는 등 독재를 통해 권력을 유지해왔다.
보건단체들은 짐바브웨가 한때는 아프리카에서는 식량이 풍부하고 보건시스템도 좋은 나라였으나 무가베의 실정으로 식량과 깨끗한 식수가 부족하고 기본 위생과 보건환경이 열악한 나라가 됐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최근 무가베가 부인 그레이스(52) 여사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결국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다.
무가베는 지난 6일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던 국방부 장관 출신의 에머슨 므난가그와(75)를 부통령직에서 전격 경질했다. 이는 부인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는 포석으로 해석됐다.
이에 므난가그와 전 부통령을 지지하던 군부는 숙청 중단을 요구하며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고, 결국 군부는 15일 국영방송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고 발표했다.
무가베는 게릴라 지도자로 체포돼 수감생활을 한 뒤 감옥에서 풀려나고서 내부의 거센 저항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궁지에 몰린 로데지아 정부가 치른 1980년 선거에서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리에 당선됐다.
그는 집권 초기에는 인종 간 화합을 이룩하고 대다수 흑인을 위해 교육과 보건 부문의 개혁을 이룬 공로로 국제사회의 칭찬을 받았으나 장밋빛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무가베는 1974년 석방된 뒤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ZANU)'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지도자 자리에 오르며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에 취임하고 나서 2년 뒤 '짐바브웨아프리카국민동맹(ZAPU)'을 이끌던 그의 정치적 동지 조슈아 은코모를 제거한다.
1982년 당시 내무장관이던 은코모는 고향인 마타벨레랜드 지역에서 은닉된 다량의 무기가 발견돼 쿠데타 모의 혐의로 쫓겨났다.
짐바브웨의 다수족인 쇼나 부족 출신인 무가베는 북한이 훈련한 정예부대 '5여단'을 동원해 은코모의 은데벨레 부족을 상대로 무자비한 숙청작업을 벌여 2만여 명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이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무가베는 자국 내 백인 농장주들의 농장과 땅을 몰수하고서 이들을 갑자기 내쫓음으로써 '서구 사회의 친구'에서 '독재자'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됐다.
독립투쟁 동지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취한 그의 토지개혁 정책은 농업부문의 몰락을 가져오고 국외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여 결국 국가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졌다.
무가베는 그러면서 인권탄압과 부정선거를 통해 권력에 집착했다고 비평가들은 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등은 무가베와 그 가족, 측근 등의 자산 동결과 여행금지 등 제재를 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학의 샤드락 구토 교수는 "한때 위대한 지도자였단 무가베가 지금은 국가를 바닥으로 추락시킨 장본인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짐바브웨 독립의 주춧돌을 놓은 랭커스터 하우스 회의를 중재한 피터 캐링턴 전(前) 영국 외무장관은 무가베를 잘 안다면서 전기작가인 하이디 홀란드에게 "무가베에게 인간적인 면모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비열한 정서가 뱀처럼 도사리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캐링턴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나 똑똑한 면에서는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무가베는 그러나 지독히 교묘한 종류의 인간"이라고 덧붙였다.
가느다란 콧수염을 기르고 두꺼운 뿔테 안경이 트레이드 마크인 무가베는 최근 십수년간 서구 사회의 적대자임을 스스로 자임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과 측근들을 겨냥한 서구의 경제제재를 국가 전체에 대한 경제파탄의 주범이라며 신랄한 비난을 가하고 있다.
무가베는 지난 2013년 제작된 한 다큐멘터리에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독재자라고 할 때는 그 사람의 위신과 명예를 더럽히려는 의도로 그런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무가베의 후계자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온 짐바브웨에서 이제 노쇠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치권에서는 바야흐로 권력 암투가 시작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그가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수년째 이어지는 루머에도 싱가포르에 자주 방문하는 이유를 백내장 치료 목적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무가베의 둘째 부인인 그레이스 무가베는 무가베가 80세를 훌쩍 넘긴 어느 날 그가 아직도 동트기 전에 일어나 업무에 임한다고 자랑을 늘어놓은 바 있다.
무가베의 개인비서 출신으로 41살 연하인 그레이스는 최근 그의 강력한 후계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무가베는 지난해 국외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그래, 사실이다. 나는 죽었었다. 그리고 매번 그런 것처럼 부활해서 이렇게 짐바브웨로 돌아왔다"라며 그가 사망했다는 항간의 소문에 일침을 날렸다.
하지만 무가베는 최근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는 데다 공식 석상에서 한 번 이상 넘어졌으며, 지난해 의회 개원 연설에서는 엉뚱한 연설을 하기도 해 건강이상설이 제기됐다.
1924년 2월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 북서부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무가베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소 떼를 먹일 때도 항상 책을 읽는 학구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0살 때 목수였던 아버지가 가출하고서 더욱 공부에 매진해 17살 때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애초 마르크스 사상을 받아들인 무가베는 남아공 포트해어 대학에 진학하면서 남아공 미래의 정치 지도자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가나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가나 초대대통령 크와메 은크루마의 영향을 받고 로데지아로 돌아온 그는 1964년 국민저항 운동을 이끈 죄로 이후 10년간 정치범 수용소와 감옥에서 고초를 겪었다.
무가베는 감옥에서 통신학습을 통해 3개의 학위를 추가로 취득한다.
그러나 복역 기간 중 그와 가나 출신 아내 샐리 프란체스카 사이의 4살 난 아들이 사망했지만 로데지아의 행정관이던 이언 스미스는 그의 임시 출소를 허락하지 않아 아들의 장례식에는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무가베의 막후실세 노릇을 한 그레이스는 최근까지 그의 강력한 후계자로 인식됐다.
전기작가인 마틴 메레디스는 "무가베의 집착 대상은 재산이 아니라 권력이다"라며 "무가베는 반체제 인사를 억압하고 법률을 어기는가 하면 재산권을 짓밟고 언론을 탄압하며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등 폭력과 압제를 통해 권좌를 유지해 왔다"라고 분석했다.
airtech-ken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