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올해 36번째 1심 무죄…2015∼2016년의 약3배↑(종합)
대법 여전히 유죄지만 항소심 유죄 단 1건…재판부 "완전 면제 등 특혜 아닌 대안 요구"
(의정부=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20대 남성에게 1심 법원이 또 무죄를 선고했다.
올해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36번째 1심 무죄 판결이다. 이는 2015∼2016년(13건)의 약 3배에 달한다.
대체복무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소수자 요구 무시한 형벌 안 돼"…무죄 판결 잇따라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 권기백 판사는 지난 9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A(20)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권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병역의무의 완전한 면제나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며 "실제로 많은 민주국가가 그 대안을 마련해 갈등관계를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 판사는 "지금까지 국가는 피고인과 같은 사람들의 요청을 소수자라는 이유로 무시한 채 형벌을 가해 왔다"며 "국가가 나서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이런 갈등 상황을 내버려두는 것은 헌법에 따른 기본권 보장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하는 '정당한 사유'에 포함된다고 볼 여지가 크다"면서 "대법원이 여러 차례 유죄 의견을 밝혔음에도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끊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최근에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고 덧붙였다.
권 판사는 앞서 지난 8월 10일에도 같은 취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처럼 1심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례는 올해 모두 36건이다.
이 중에서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힌 사례는 단 1건이다. 해당 사건 항소심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 대체복무제 논의 본격화하나
올해 36번째 무죄 판결이 내려진 지난 9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국에서 열린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에서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문제가 거론됐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범죄로 지정하지 말고 순수 민간 대체복무가 가능하게 하라는 권고에 대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어 "한반도의 엄중한 상황과 군 복무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달라"면서 "국회에 관련법이 제출된 만큼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대체복무제의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민간 대체복무란 군 복무를 대신해 개인의 양심과 상충하지 않는 방법으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를 말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 제도 도입을 국가에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
지난 8월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904명이 대체복무제 마련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병역거부자들을 대리했던 김진우 변호사는 연합뉴스에 "아직 대법원 판례까지는 나오지 않았으나 하급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며 "대체복무제가 없는 현실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바라보는 법원의 태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양심의 반대말이 비양심?…여전한 논란
국제사회의 지적과 법조계의 변화에도 '국민 정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가장 흔한 논리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면, 군대 갔다 온 사람은 비양심이냐"는 얘기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양심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것이지, '국민의 의무'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 아님에도 용어를 둘러싼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 만큼 예민한 주제도 드물다 보니 관련 기사가 보도되면 '양심' 대 '비양심'으로 나뉜 댓글 논쟁을 쉽게 볼 수 있다.
앞선 UPR 관련 보도에도 "자기들이 뭐라고 양심적 병역거부 어쩌고 하는 거야. 우리라고 좋아서 징병제로 가는 줄 아나?"(아이디 'qkfw****'), "지금 현역들 전부 십자가 들고 집으로 가라, 뭐하러 비양심 취급당하면서 거기서 개고생하고 있냐"(아이디 'wjdt****')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더라도 대상자 심사의 공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해병대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배종형(28)씨는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돼야 하는 게 맞다"라며 "그러나 그 대상자를 공정하게 심사할 수 있을지, 돈 많은 사람이나 권력자들한테 이용당하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김은목(27·여)씨도 "양심과 가치관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수는 있다고 생각되나 그 양심과 가치관을 과연 누가 판단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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