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수험생을 잡아라"…극장가에 아이돌·히어로군단 출격
한국영화 호화캐스팅으로 마블·DC에 도전…'11월=비수기' 옛말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전통적으로 11월은 극장가 비수기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작들이 몰리는 여름철과 연말을 피해 흥행을 노리는 중급 영화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성수기에 좀처럼 개봉관을 잡지 못한 작은 영화들도 줄줄이 내걸린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는 모두 182편으로 열두 달 중 가장 많았다.
2010년대 들어 11월에 성공을 거둔 사례들의 학습효과가 컸다. 2012년 송중기·박보영 주연의 '늑대소년'이 665만 관객을 동원하며 멜로영화 흥행사를 새로 쓴 데 이어 2015년에는 '내부자들'(707만)과 '검은 사제들'(544만)이 관객을 대거 끌어모았다.
외화의 공세도 늦가을 극장가를 달구는 요인이다. 2013년 마블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 '토르: 다크 월드'가 3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이듬해 '인터스텔라'는 천만 영화가 됐다. 지난해는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544만)와 해리포터 시리즈의 외전 격인 '신비한 동물사전'(466만)이 차례로 11월 스크린을 점령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6년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서 "성수기에는 한국 대작 영화가 극장가를 주도하고 비수기에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가 맹공을 퍼붓고 있어 중박 흥행을 기대하는 중급 영화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는 형국"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11월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을 얼마나 극장으로 불러들이는지가 흥행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재작년 '검은 사제들'의 경우 공포영화로는 드물게 여름철을 피해 수능 1주일 전(11월 5일)으로 개봉일을 잡았다. 20대 이하 젊은 관객에 대한 강동원의 티켓파워를 활용한 전략이 성공을 거둔 셈이다.
수능 직후 젊은 관객이 영화관에 몰리는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CGV리서치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0대 이하 관객 비율은 1주차 3.1%에서 수능 직후인 3주차엔 6.4%로 배 이상 뛰었다. 20대 관객 역시 같은 기간 39.6%에서 46.2%로 늘었다.
지난해 수능 전날인 11월 16일 개봉한 판타지 '신비한 동물사전'은 전체 관객 중 10대 이하가 5.0%, 20대는 48.6%로 나타났다. 작년 전체 관객 연령대가 10대 이하 3.4%, 20대 35.9%인 점을 감안하면 젊은층이 흥행을 이끈 영화다. 같은 날 개봉한 강동원의 '가려진 시간'은 관객 수 51만 명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지만, 10대 이하 관객 비율은 평균의 세 배에 가까운 10.9%에 달했다.
올해도 수능 특수를 겨냥한 영화들이 잇따라 관객을 찾는다. 미국 대학가를 배경으로 공포와 유머를 섞은 '해피 데스데이'가 지난 8일 개봉했고, 아이돌그룹 엑소의 도경수가 신하균과 호흡을 맞춘 블랙코미디 '7호실'은 수능 전날인 15일 극장에 걸린다.
15일에는 히어로물 '저스티스 리그'도 개봉한다. 배트맨·슈퍼맨·원더우먼·아쿠아맨 등 DC코믹스를 대표하는 히어로들이 총출동하는 액션 블록버스터다. 마블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는 지난달 말 개봉해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DC와 마블의 대작 두 편이 11월 한국 극장가 수위 자리를 놓고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수능 다음주인 22일로 개봉일을 잡은 '꾼'은 현빈과 유지태,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나나 등 호화 캐스팅으로 젊은 관객을 끌어들일 전망이다. 정해인·김지훈 주연의 무협 사극 '역모-반란의 시대'도 23일 개봉한다.
영화계는 수험생 상대 홍보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7호실'의 신하균·도정수는 수능 당일인 16일 열한 차례 무대인사를 한다. 일본 멜로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합격 기원 사인펜'을 만들어 관람객에게 제공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메가박스는 이달 말까지 수험생에게 티켓 할인권을 준다.
수능을 맞아 반전을 꾀하는 영화도 있다. 고교생들의 기상천외한 커닝작전을 그린 태국영화 '배드 지니어스'는 2일 개봉 이후 관객 수 1만5천 명을 넘어서며 다양성 영화 치고는 선전 중이다. 그러나 개봉 열흘 만에 신작들에 밀려 상영관이 크게 줄었다.
국내 홍보사는 지난 9일 표창원 의원과 청소년 관객들을 초청해 상영회를 여는 등 '역주행' 분위기 조성에 애쓰고 있다. '배드 지니어스' 관계자는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젊은 관객을 타깃으로 한 영화인 만큼 수능이 끝나면 스크린이 좀더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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