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 용'에 쏠린 부와 권력…오늘의 적폐 만든 주범
美 정치평론가, 왜곡된 능력주의 비판한 '똑똑함의 숭배'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개천 용'(개천에서 나서 용이 된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어려운 환경을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하고 성공하는 이들이 줄고, '금수저'가 득세한다는 것이다. '개천 용'에는 능력주의, 실력주의를 선으로 보는 인식이 깔렸다.
신간 '똑똑함의 숭배'(갈라파고스 펴냄) 저자인 미국 정치평론가 크리스토퍼 헤이즈는 미국을 무대로 능력주의의 과도한 숭배가 어떻게 사회 전체를 무너뜨려 왔는지를 보여준다.
능력주의는 인종과 성, 취향에 따른 부당한 차별의 철폐를 강조한다. 하지만 인간이 능력이나 진취성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전제한 채 새로운 계급, 즉 '재능의 귀족'의 탄생을 인정한다.
문제는 '재능의 귀족'에게 몰리는 막대한 부와 권력에 있다. 이들이 자신의 능력 발현을 위해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는지를 고려하더라도, 보상이 과하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엄청난 보상과 특권을 거머쥔 신흥 귀족은 자신이 타고 올라온 사다리를 치우거나, 동료나 자녀에게 선택적으로 내려보내기 쉽다. 능력주의 체제가 초래한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결국 오늘날 우리가 보는, 순환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책은 1979~2007년 미국 국내 총소득 증가분의 88%가 상위 1%에게 돌아갔다는 국민 소득 미국 경제학자 이매뉴얼 사에즈의 연구결과를 비롯해 지난 수십 년간 불평등 심화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열거한다.
똑똑함을 칭송하는 수준을 넘어 숭배하는 미국 내 분위기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금융위기 등을 악화하는 데 일조했다. 책은 사회 지도자로서 적임자인 명석하고 도덕성 있는 인재를 뽑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거물을 양산하는 교육 체제도 날을 세워 비판한다.
책은 미국을 무대로 하지만, 오늘날 '소년 급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몰락 소식을 계속 접하는 한국 사회에도 필요한 책이다.
원제 Twilight of the Elites: America After Meritocracy. 한진영 옮김. 404쪽. 1만7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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