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제한 풀린 성범죄자 최소 4만명…"연내 법 개정해야"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1년째 표류…여가부 토론회 열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성범죄자 취업제한 제도가 위헌이라는 지난해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입법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범죄자가 유치원·학원·어린이집 등에 취업할 수 있는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지난해 3월부터 성범죄자의 업종별 취업제한 규정 잇따라 위헌 결정을 내렸다. 범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10년간 취업을 못하도록 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규정들은 각각 결정 즉시 효력을 잃었다. 여성가족부는 위헌 결정에 따라 취업제한이 사실상 풀린 성범죄자를 지난해 말 기준 최소 4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해 11월 범죄의 경중과 재범 위험성에 따라 취업제한 기간을 차등화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냈다. 3년 이상 징역·금고형은 30년, 3년 이하 징역·금고형이나 치료감호 판결을 받으면 15년, 벌금형은 6년 범위 내에서 법원이 취업제한 기간을 판단해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지난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한 차례 수정된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년 가까이 계류 중이다.
이금순 여가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장은 "필수적으로 취업제한을 명령하도록 한 여가부 대안이 위헌 결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했는지 견해가 엇갈리고 있어 법사위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종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사협회 등 이익단체들의 문제제기도 영향을 미쳤다.
여가부는 30일 국회·법조계·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성범죄자 취업제한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입법공백으로 인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조속히 법률을 개정하도록 국회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크다.
여가부 법률자문관인 안성희 검사는 "헌재는 범죄의 경중과 무관하게 일률적인 10년의 취업제한 부과가 지나치다고 하고 있을 뿐 취업제한 자체까지 법원에서 심사해 면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대로 양태건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어느 정도로 취업을 제한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심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헌재 결정문 내용을 제시하며 예외없는 취업제한은 헌재의 취지에 여전히 저촉된다고 주장했다.
양 부연구위원은 죄가 비교적 가벼워 벌금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만 법원 재량에 따라 예외적으로 취업제한을 명령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취업제한을 필수로 해야 할지를 놓고는 견해가 엇갈렸지만 빠른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안성희 검사는 "위헌 결정 이후 1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성범죄자가 우리 아이들이 뛰노는 공간에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반드시 연내에 개정안을 통과시켜 성범죄자의 취업을 방지한다는 목표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현장에서는 성범죄자가 입법 공백을 틈타 실제로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에 취업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 여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여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 운영자가 직원의 성범죄 경력조회를 하지 않아 과태료 징수 처분을 받은 경우가 1천239건에 달했다.
과태료 부과 건수는 2015년 276건에서 위헌 결정이 줄줄이 난 지난해 361건으로 늘었다. 올해도 8월까지 217건이 적발됐다.
반대로 성범죄 경력이 있는데도 취업제한 분야에서 일하다가 적발돼 해임된 경우는 2014년 78건, 2015년 58건에서 지난해 14건, 올해 10건으로 크게 감소했다. 위헌 결정으로 취업제한 분야 자체가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가부 관계자는 "위헌결정이 나왔다고 해서 성범죄 경력조회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며 "위헌결정과 관계없이 아동·청소년 관련기관에 취업 중이거나 취업하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연 1회 이상 성범죄 경력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