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촛불 1주년에 '정의와 통합' 강조한 문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현 정권을 세운 촛불집회에 대해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통합된 힘"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또 "촛불은 이념과 지역과 계층과 세대로 편을 가르지 않았다"고도 했다.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다. 무엇보다 '정의'와 '통합'을 대등한 가치로 언급한 점이 눈길을 끈다. '정의'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실정을 바로잡는 '적폐청산'을 연상하게 한다. 촛불집회의 태동 과정과 결과를 생각할 때 충분히 대통령의 1주년 메시지에 담을 만하다. 정치적 레토릭이긴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에선 '촛불 혁명'이란 말이 공공연히 쓰인다.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과 파면, 조기 보궐대선을 거쳐 문재인 정부를 낳은 '변혁의 힘'이 촛불집회에서 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반면 '통합'은 그 정도까지 촛불집회와 딱 들어맞는 개념은 아닌 듯하다. 더구나 '정의'와 나란히 세울 만큼 비중 있게 추구해온 가치로 보기도 어렵다.
문 대통령의 의중은 같은 날 세계한상대회 참석자들과 가진 청와대 간담회에서 구체화으로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지금 새 정부는 국민의 힘으로 적폐청산을 힘차게 추진하고 있다"면서, 촛불집회에 담긴 정신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이어받은 적폐청산도 진영을 초월하는 보편적 목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해방 후 성장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늘에서 생긴 여러 폐단'을 씻어내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게 적폐청산이며, 그것은 "보수, 진보, 여야, 과거 어느 정당에 있었는지, 어떤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는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촛불집회에 담긴 정의와 통합의 가치를 적폐청산에 투영해 '전 정권 사정'이라는 야권의 비판을 반박한 듯하다. 앞으로 흔들림 없이 적폐청산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현 정권에서 '촛불'이 갖는 의미와 비중을 생각할 때 문 대통령의 촛불집회 1주년 메시지는 낮은 강도로 정제된 듯한 느낌을 준다. 촛불민심의 의의를 되새기면서 차분하게 1주년을 보내자는 게 원래 청와대 생각이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페이스북 글과 간담회 발언은 그런 기조에서 나온 '차분한' 메시지인 셈이다. 물론 배경이 있을 것이다. 지지층이 많이 참가했을 법한 1주년 기념집회가 광화문과 여의도로 갈라진 상황이 껄끄러웠을 수 있다.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당초 청와대 쪽 행진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고 한다. 이 '퇴진행동'의 핵심 세력이 최근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민주노총이다. 이렇게 보면 문 대통령이 강조한 '통합'이 꼭 보수 야권만 겨냥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염두에 둔 듯하다.
'통합' 메시지의 일차적 목표는 적폐청산의 명분 강화인 것 같다. '정의와 통합'의 국민 의지로 타오른 촛불집회의 연장선에 적폐청산이 있으니 정치보복 운운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적폐가 시작된 시점으로 '해방 후'를 언급하기도 했다. 직전 9년간의 보수정권을 겨냥한 게 아님을 강조하려는 뜻일 테지만 '해방 후'라는 말이 아득하게 들리기도 한다. 문 대통령 말대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적폐청산이라면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러나 적절한 선에서 멈출 것을 국민이 느낄 수 있는 적폐청산이었으면 한다. 그러려면 청산의 범위와 속도를 현실에 맞춰 조절하고, 추진방법의 합법성도 충분히 갖춰야 한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연일 적폐청산을 공격하고 있다. 이미 국정감사를 보이콧했고 예산국회도 제대로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야당이 억지를 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야당한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건 정부·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국정운영의 최종적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역지사지의 정치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무조건 야당을 '반개혁'의 청산 대상으로 몰아붙이면 끝없는 대결과 갈등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여권에선 '적폐청산을 안 하면 미래도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친일잔재를 말끔히 청산하지 못한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폐청산에만 매달린다고 해서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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