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에 취해 '삐끗'…구조대원은 15시간 산에서 '땀 뻘뻘'
한 번 출동에 최소 1∼2시간 소요…다 짓눌려 녹아버린 초코바가 '한 끼 식사'
무릎 통증·허리 디스크 등 잔부상 시달려…산악사고 원인 40%가 '무리한 산행'
(속초=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하루 24시간 중 15시간은 산에서 보냅니다. 무릎 통증이나 허리 디스크 등 구조대원 모두가 잔부상을 달고 살 정도예요."
지난 21일 정오께 찾은 강원 속초시 설악동의 강원도 소방본부 특수구조단 119산악구조대 사무실은 의무소방원이 홀연히 지키고 있었다.
3시간 정도 지났을까. 윤보성(44) 팀장이 대원들과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윤 팀장은 "요즘은 주말이고, 평일이고 하루 15시간은 산에서 보낸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윤 팀장 말대로 가을철이 되면 산악구조대원들은 소위 '자연인'이 된다.
전국 유명산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면 주말마다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탓에 각종 사고가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산악사고는 대부분 산 중턱이나 정상 부근에서 발생한다. 올라갈 때는 체력적 여유가 있어 잘 올라가지만, 하산 시에는 체력을 소모한 상태에서 발목을 접질리는 등 다치기 쉬워서다.
단풍의 황홀경에 빠져 다리를 '삐끗'하는 등산객부터 무리한 산행으로 인한 탈진과 저체온증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라 산악구조대원의 시곗바늘은 눈 깜짝하는 사이 한 바퀴를 훌쩍 돈다.
이맘때면 구조대는 보통 평일 하루 4∼5건, 주말 6∼8건 출동한다. 언뜻 보면 적어 보이지만 한번 출동해 구급차로 환자를 옮기기까지 '최소 1∼2시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종일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다.
4인 1개 조로 하루씩 근무하기 때문에 사무실에 엉덩이를 잠깐 붙일 시간도 없다. 부상자를 구급차에 인계하고 현장에서 바로 다음 출동으로 넘어가는 일이 반복된다.
설악산 양폭폭포 인근 산악구조 [강원도 소방본부 제공=연합뉴스][https://youtu.be/Z7ij5SqcJy0]
헬기 역시 주유할 시간도 없이 해가 지기 전까지 능선을 넘나들며 상공을 누빈다.
험한 산세와 싸우다 보면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다. 대원들의 주머니에는 열량이 높은 초콜릿, 초코바, 사탕 등이 항상 들어 있다.
정신없이 구조활동에 매진하다 보면 어느새 다 짓눌려 포장지에 들러붙을 정도로 녹아버린 것을 '한 끼 식사'로 때우는 일도 익숙하다.
산악구조대가 기피부서인 것도 당연지사. 산악구조 업무만 15년이나 한 윤 팀장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산악구조 업무는 속된 말로 '빡세다'.
"저희가 부상이 좀 많아요. 부상자를 업거나 들것을 이용해 하산하는 일이 잦아 다들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어요. 체력을 끌어올리려고 운동을 많이 하지만 육체적으로 아주 힘들죠."
22일 강원도 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9∼10월 산악구조출동 건수는 220건으로 1년간 산악사고출동 건수의 30%였다.
이들 중 탈진, 조난 등 부상 외 환자가 41%다. 장비를 잘 갖추고 사전에 등산 코스와 난이도를 충분히 숙지해 자신의 체력에 맞게 산행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다.
하지만 구조대원들에게는 부상 정도가 경상이라고 해서 사고 자체가 경미하다고 볼 수 없다. 야간이 되면 금방 기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몰 시간이 빨라져 날이 어둑해지면 초조하고 불안한 등산객들이 119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신고도 많다.
설악산 봉정암 산악구조 [강원도 소방본부 제공=연합뉴스][https://youtu.be/BFtNmYCJsJw]
다만 등산객들의 잘못된 음주문화로 일어나는 사고나 해프닝은 구조대원으로서는 속상한 일이다.
신고가 몰리면 관할소방서 구조대나 국립공원관리공단 내 안전팀이 힘을 보태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면 부상자들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작 응급환자가 제때 구조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 팀장은 "한번은 '사람이 쓰러져있다'는 신고를 받고 갔는데 술을 드시고 주무시고 계신 거였다. 다행히 잘 모시고 내려왔지만, 산행 중 술을 마시면 에너지를 급격히 소모해서 체온이 떨어지는 등 위험할 수 있으니 삼가달라"고 강조했다.
오늘도 산속 어딘가에서 다친 사람들을 위해 가을바람을 헤치고 달려가는 구조대원들의 굵은 땀방울이 단풍잎을 적신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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