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 이맘 깃발 앞세운 이라크군…이란 영향력 과시
이란 "키르쿠크 작전에 전혀 개입하지 않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했던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이라크군에게 키르쿠크 주를 속수무책으로 내주면서 가장 섭섭했던 쪽은 이란이었던 듯하다.
이란의 '외면'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반응이다.
기원전 8세기께 쿠르드족이 현재 이란 서부에 세운 메디아 왕국은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의 연합 세력이었다.
고대사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KRG와 이란의 인연은 나쁘지 않았다.
이란과 이라크 쿠르드족은 1980년 사담 후세인 정권과 연대해 맞섰다. 쿠르드족이 치른 대가는 가혹했다. 후세인 정권은 이란 편에선 쿠르드족을 겨냥해 1986년부터 2년여간 화학무기를 동원한 안팔 작전을 벌여 수만명(최소 5만∼최대 18만명)을 학살했다.
2014년 이슬람국가(IS) 사태로 이라크와 이란 국경이 IS의 공격을 받자 이란은 KRG의 군조직 페슈메르가를 지원했다. 페슈메르가는 이란과 맞닿은 이라크 중북부 디얄라 주의 국경지대에서 IS 방어 임무를 완수했다.
16일 밤 이라크군 탱크는 이라크 국기 외에 다른 깃발을 하나 더 달고 키르쿠크 주에 진입했다.
시아파가 가장 숭모하는 이맘 후세인의 초상이 담긴 초록색 깃발이었다.
이맘 후세인은 서기 680년 이라크 중부 카르발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수니파 우마이야 왕조에 맞서다 비극적으로 전사했다.
이슬람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릴 결정적 계기였다. 이맘 후세인은 시아파 무슬림에겐 수니파에 대한 적대와 저항의 상징이다.
이맘 후세인의 깃발을 내세운다는 것은 그만큼 결연한 의지와 보복을 뜻한다. 이라크군은 종종 수니파 극단주의 조직인 IS와 전투에서도 이맘 후세인 깃발을 달았다.
이라크 쿠르드족 역시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이다.
이번 KRG '퇴출 작전'에 가담한 또 다른 무장조직은 시아파 민병대(하시드 알사비)였다.
키르쿠크 주위 쿠르드계 주민이 두려워한 대상은 정부군이 아니라 이들이었다. 쿠르드계가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시아파 민병대가 쿠르드계 주민을 죽였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시아파 맹주 이란이다.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는 이란이 직접 지원한다.
KRG 역시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쿠르드계 언론은 이라크군이 진입한 주정부 청사 사무실에 이란 최고지도자의 사진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쿠르드계 루다우 방송은 15일 밤 이라크 정부 대변인과 화상 인터뷰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 쿠드스군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정부 대변인은 "쿠드스군은 시아파 민병대의 군사 고문"이라고 답하다 질문이 계속되자 생방송 도중 자리를 떴다.
중앙정부가 해임한 쿠르드계인 나즈말딘 카림 키르쿠크 주지사는 "키르쿠크 주에 대한 공격은 이란 사령관이 지휘하는 시아파 민병대의 작전"이라고 지목했다.
이라크 중앙정부가 친이란 시아파가 주도하는 만큼 이란이 이번 KRG와 분쟁에 최소한 중립적이기만 했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쿠르드족의 염원인 독립국 수립이 좌초되지는 않았을 터다.
KRG의 분리·독립 투표로 촉발된 이라크 정부와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의 군사적 대응이 '성공'을 거두면서 결과적으로 이라크 정세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이 돋보이게 됐다.
이슬람국가(IS) 사태가 마무리되는 국면에 처음 불거진 이라크의 내부 갈등에서 이라크를 움직이는 힘은 모두 이란과 연관된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KRG의 분리·독립에 미국이 어정쩡하게 대응하는 사이 이란은 이라크 정부의 군사 행동을 확실히 지지하면서 KRG와 분쟁을 신속히 정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미국과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도 지난 3년간 이라크 정부의 IS 격퇴전을 지원했지만, 키르쿠크로 진격한 이라크군 탱크에 달린 시아파 이맘 깃발은 이라크 정부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이란은 이번 이라크 내 상황에 선을 그었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측근인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는 17일 "이라크군의 키르쿠크 작전에 혁명수비대는 전혀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서 "KRG 자치수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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