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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자 하경수 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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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자 하경수 상병

휴가 내고 대신 참여…"세상 떠난 동생도 기뻐할 것"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5일 오전 세이브더칠드런과 연합뉴스 주최로 국제어린이마라톤이 펼쳐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는 군복 차림의 자원봉사자가 눈에 띄었다.

주인공은 육군 제8기계화보병사단 경비대대의 하경수(23) 상병. 현역 사병에게는 금쪽같은 휴가를 내면서까지 먼 길을 달려와 참가자들의 신청 자료를 정리하고 안내를 돕는 등 봉사활동을 펼친 것이다.

"휴가 때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오늘 이 자리가 제게는 무척 소중합니다. 제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제 동생의 꿈을 이뤄주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무엇보다 행복한 표정의 어린이들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 기분이 좋습니다."

하 상병에게는 둘도 없는 여동생(하우정·21)이 있었다. 20년 동안 단칸방에서 함께 지내 세상 그 누구보다 친한 사이였는데 7월 25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모든 돈을 미혼모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캄보디아로 봉사를 다녀오는 등 나눔 활동에 앞장서 왔다.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는 아프리카 신생아들을 위해 털실로 뜬 모자를 기부하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이벤트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보람찬 군 생활을 위해 복무 기간에 꼭 해야 할 일로 '군킷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건강한 체력 유지'였고 마라톤 완주로 그 성과를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10월에 열리는 마라톤대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세이브더칠드런의 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봤습니다. 제가 선수로 뛸 대회가 아닌데도 눈에 꽂혀 다른 페이지로 옮겨갈 수가 없더군요. 동생의 '버킷리스트'에 세이브더칠드런 모자 뜨기가 있던 게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 길로 자원봉사자 신청을 내고 휴가를 얻어 참여했습니다."

하 상병의 부모는 이혼했다. 함께 사는 어머니도 장애등급을 받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생활해왔다. 하 상병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에서부터 20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그 가운데서도 꿈을 잃지 않고 남과는 다른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해왔다고 한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자전거로 전국 일주도 하고 걸어서 국토 종단도 했다. 군에 입대할 때도 영화 '스물'의 주인공들처럼 걸어서 아산에서 논산 훈련소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하 상병은 남들을 돕는 게 얼마나 값지고 뿌듯한 일인지 군에 와서 알게 됐다고 한다. 경기도 포천의 부대 근처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의 수발을 들고 말동무를 해주면 이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보며 비로소 동생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내친김에 한빛부대에 지원해 지난해 11월부터 올 7월 초까지 남수단으로 파병을 다녀왔다. 현지인들의 자활을 위해 학교를 짓고 도로를 닦으며 봉사의 기쁨을 체험했다.

"파병부대는 우리나라 국군의 국가대표인 셈이잖아요. 지게차를 운전하고 건축 자재를 만들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저희에게 'Give me water, Give me money'(물을 주세요, 돈을 주세요)라고 외치는 어린이들을 만나면 제가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본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과 겹쳐져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엔 일고여덟 살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이가 돌도 채 안 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동안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국제구호단체의 사진에서 보던 광경을 실제로 목격한 겁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사히 파병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지 20일 만에 동생을 잃자 하 상병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빠졌다. 그러나 동생이 못다 한 일을 대신 해주면 저 세상의 동생도 기뻐할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동생은 늘 긍정적이었습니다. 만약 길을 잃어 한두 시간 허비하면 아깝다는 생각 대신 그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고 여기는 식이죠. 저도 유정이를 잃어 아쉽기 짝이 없지만 더 필요로 하는 곳에서 데려갔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한 달에 한 번 영화 보러 가기, 아프리카에 뜨개질 모자 보내주기, 전 세계의 스타벅스 텀블러 모으기 등 동생이 이루려던 목표는 제가 대신할 겁니다. 오빠와 함께 인도 여행하기는 이룰 수 없게 됐지만요."

동생과의 이별 때문에 하 상병은 마음이 바빠졌다고 한다. 다음 달 마라톤 완주에 성공한 뒤 내년 1월 전역하면 100㎞ 울트라 마라톤과 사막 마라톤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100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보려는 계획도 달성 시기를 앞당겼다. 장래 희망은 여행작가와 크루즈 승무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서 남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저도 행복해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행하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기 때문에 저도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서 남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도우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을 돕는 일은 훨씬 즐겁죠.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풍선아트와 마술도 독학으로 배웠습니다. 국내외를 여행하며 남들에게 웃음을 주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hee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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