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정동 '선포 120주년' 대한제국을 다시 만나다
서울 중구 '정동야행' 축제…저녁 고궁서 콘서트·체험행사 눈길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한껏 무게감을 뽐내면서도 거만하지는 않은 비발디 '사계' 중 '가을'의 파이프 오르간 선율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유럽의 어느 성당 못잖게 금빛 모자이크와 아치로 꾸민 예배당은 삼삼오오 앉은 연인, 친구, 아이들로 가득 찼다.
이곳은 바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한국 전통 양식의 조화가 매력적인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다. 13일 서울 중구가 주최한 역사문화축제 '정동야행'을 맞아 성당 측이 내부를 개방하고 연주회를 선보인 것이다.
구가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여는 정동야행은 올해로 벌써 3년째다. 이번 가을 축제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정동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 주는 역사적 배경, 바로 대한제국이 선포 12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구는 이에 따라 '대한제국을 품고 정동을 누비다'를 이번 축제의 주제로 내걸고, 14일까지 다양한 전시·공연·체험 행사를 마련했다.
축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동 거리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로 금세 북적였다. 날씨가 꽤 쌀쌀해졌음에도 삼삼오오 한복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연방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덕수궁의 트레이드마크 돌담길은 축제를 맞이해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골목 이곳저곳에는 다양한 체험 코너가 마련돼 호기심 많은 아이의 발길을 붙잡았다.
특히 대한제국 선포 의식에서 중요한 의물(儀物)로 쓰인 푸른옥을 활용한 옥팔찌 만들기와 고종이 궁내에서 타고 다닌 어차 '쇠망아지'(자동차의 옛말) 만들기 체험이 관심을 모았다.
아이들은 쌀쌀해진 날씨에 저마다 패딩을 입고 고사리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모형을 만들어 나갔다.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 대신 조립에 매달리는 어머니도 있었다.
경기도 수원에서 초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온 김정옥(38·여)씨는 "아이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대한제국 시대의 전화기, 자동차, 문물을 보여줄 수 있어서 교육적으로도 좋은 것 같다"며 "아이 때문에 오는 어른들도 즐길 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그의 딸은 "너무 재미있다"며 "아까는 양산을 만들어 색칠했는데, 옛날 물건 같아 실감이 난다"고 말하며 쇠망아지 조립을 이어갔다.
정동야행이 자랑하는 콘텐츠인 역사문화시설 야간 개장은 이번 축제에서도 이어졌다.
구는 덕수궁, 시립미술관, 정동극장, 주한캐나다대사관, 서울역사박물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이화박물관, 순화동천 등 35개 시설을 최대 밤 10시까지 연장 개방했다.
덕수궁의 중심 건물인 중화전 앞에서는 평소 접할 수 없는 이색 공연이 열렸다.
해가 넘어간 고즈넉한 고궁에 무대를 차리고, 그룹 '동물원'과 색소폰 연주자 대니 정이 포크와 재즈로 분위기를 돋웠다.
정동 거리 한쪽에서는 풍선을 활용한 마임 공연이 펼쳐졌다. 흥겨운 댄스 음악에 맞춰 풍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로켓에서 비행기로, 다시 백조로 변신을 거듭할 때마다 시민들은 넋을 잃고 박수를 쳤다.
서울 성동구에서 온 박주리(31) 씨는 "이번이 세 번째 정동야행인데, 이번에는 올여름 새로 개방한 영국 대사관 인근 덕수궁 돌담길이 무척 좋았다"며 "은은한 불빛 아래 돌담길을 거닐다 보니 낭만적"이라고 말했다.
축제를 맞아 덕수궁 석조전은 축제 기간 중 총 4회에 걸쳐 사전 신청한 시민을 대상으로 특별히 연장 개방을 했다. 을사늑약이 맺어진 비운의 장소 중명전은 지난 1년간 새 단장을 마치고 옛 모습을 복원해 시민을 맞았다.
구는 이번 축제에서 방문객을 위해 다양한 할인 이벤트를 마련했다.
정동 인근 54개 음식점에서는 스탬프나 발 도장을 3개 이상 찍은 시민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관내 41개 호텔은 축제 기간 최대 65%까지 객실료를 깎아준다.
올봄에는 역대 가장 많은 16만3천여 명의 시민이 찾아 축제를 즐겼다. 구는 이번에도 이와 비슷한 16만∼17만 명이 정동야행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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