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수첩에 현직 대법관 이름…靑, CJ사건 청탁 정황(종합)
安 '권순일 대법원에 메시지' 메모…직후 이재현 구속집행정지 연장
박주민 "靑-행정처 간 소통, 청산해야 할 적폐"
대법원 측 "권순일, 안종범 몰라…메시지 받은 적도 없다고 한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지난해 초 작성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에서 청와대가 특정 재벌 총수에 대한 형사 재판을 심리 중인 대법원 쪽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 한 정황이 담긴 메모가 확인됐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정황 증거로 채택되기도 한 이 업무 수첩은 안 전 수석이 청와대 내부 회의 내용이나 박 전 대통령의 개별 지시를 직접 받아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다.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입수한 업무 수첩을 보면, 안 전 수석은 지난해 2∼3월께 '권순일 대법원에 message(메시지)'라고 메모했다.
안 전 수석은 앞서 1∼2월께에도 'CJ 이재현 회장 권순일 대법관 파기환송 재상고'라고 메모했다.
그는 이와 함께 '대법원-대검-중앙지검', '출두연기요청', '형집행정지신청', '집행정지 심의위원 중앙지검 차장', '권순일 대법원 행정처장' 등의 메모도 했다.
이 메모들을 종합하면, 청와대 측이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 회장의 재판 진행 과정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신장 질환으로 구속집행정지 중인 이 회장의 형집행정지 가능성 등도 사전 검토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권순일 대법원에 message' 부분은 이 회장 재판과 관련해 권순일 대법관에게 또는 권순일 대법관을 통해 대법원 쪽에 메시지를 보내라는 누군가의 지시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부분이 작성된 시점은 공교롭게도 지난해 3월 18일 대법원이 이 회장의 구속집행정지기간을 연장하기로 결정하기 직전이었다.
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 등 '요직'을 거쳐 대법관에 오른 권 대법관은 안 전 수석의 수첩에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한 유일한 대법관으로, 이 회장 재상고심의 주심이기도 했다.
이후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재상고를 취하하고 형집행정지를 받은 후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가 됐다.
이 회장 재판을 두고 청와대가 대법원에 영향을 미치려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의원은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밀접하게 소통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구조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적폐"라며 "청와대가 실제 권순일 대법관이나 대법원 측에 CJ 사건 관련 메시지를 보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은 이에 대해 "한번 조사를 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이중표 법원행정처 홍보심의관은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권순일 대법관은 안종범 전 수석을 전혀 알지 못하며, 해당 사건과 관련해 어떤 연락이나 메시지를 전달받은 적 없다고 명확히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 심의관은 "사실 관계에 관한 구체적인 확인 절차 없이 단순히 자극적인 의혹 제기로 사법 신뢰가 저하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지 염려가 있다는 점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이와 관련, "본인에게 물어봐서 본인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면 조사가 끝난 것인가"라며 "그렇게 하면 유죄 판결 받을 사람, 법관 징계 받을 사람 아무도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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