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동해 향하는 美항모 로널드 레이건호에 오르다
슈퍼호넷 전투기·공중조기경보기 등 70여 대 탑재한 '바다 위 군사기지'
해상작전 돌입하면 24시간 밤낮으로 훈련하며 이·착륙 역량 키워
동해서 우리 해군과 고강도 연합훈련으로 북한 압박 예정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3일 저녁 홍콩 섬 서쪽의 차이나머천트 부두에서 작은 배를 타고 30여 분간 바다 위를 달리자 드디어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가설수록 느껴지는 것은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항모의 선수(船首)부터 선미(船尾)까지 모두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한참 돌려야 했다. 길이 333m, 너비 77m로 갑판의 크기가 축구장 3개와 맞먹는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항모에 올라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계단을 올라가자 탁 트인 넓은 공간이 나왔다. 항모에 탑재된 비행기와 헬리콥터 등을 정비하는 격납고였다. 커다란 실내 체육관이 몇 개씩이나 이어진 느낌이었다.
격납고 한쪽에는 미 해군 항공대의 핵심 전력인 F/A-18 슈퍼호넷 전투기가 정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기 조종석 아래에는 'CAPT FORREST YOUNG(포레스트 영 중령)'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미 육군에서 CAPTAIN은 대위이지만, 해군에서는 중령 계급을 가리킨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미군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네이던 굿올 중위는 "항모에 탑재된 모든 전투기에는 조종사의 계급과 이름이 적혀 있다"며 "이는 전투기를 모는 조종사의 긍지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솔 장교의 지시에 따라 격납고 맨 오른쪽 구석에 자리를 잡자 갑작스레 길이 30m, 너비 20m가량의 콘크리트판이 위로 치솟았다. 순식간에 격납고에서 약 20m 위의 비행갑판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수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알고 보니 이는 격납고에서 비행기나 헬리콥터 등을 갑판 위로 이동하는 데 쓰이는 엘리베이터였다. 격납고의 맨 오른쪽 구석이 엘리베이터 역할을 해 위로 올라가면 갑판의 일부가 되는 식이었다.
상승 속도가 왜 이렇게 빠르냐는 질문에 인솔 장교는 "전쟁이 발발하면 격납고에서 정비나 수리를 순식간에 마치고 바로 비행갑판으로 이동시켜 전투기를 발진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최대한 상승 속도를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행갑판에서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미 해군의 핵심 전력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이라크전 등 실전에서 뛰어난 공격력을 입증한 슈퍼호넷(F/A-18 E/F) 전투기, '매의 눈'으로 불리는 공중조기경보기(E-2C), 방해 전파를 발사해 적의 레이더를 교란하는 그라울러 전자전기(EA-18G), 대잠수함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해상작전헬기(MH-60 R/S) 등을 비롯한 각종 항공기 70여 대가 가지런히 배치돼 있었다.
여기에 항공모함을 따라다니는 이지스 구축함과 미사일 순양함, 군수지원함, 핵미사일을 탑재한 오하이오급(1만8천t급) 전략핵잠수함(SSBN) 등을 더하면 웬만한 나라의 전력을 능가하는 '바다 위의 군사기지'를 형성하게 된다.
선미 쪽으로 가까이 가자 항모를 가로지르는 쇠줄이 놓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전투기 등이 비행갑판에 착륙할 때 바퀴 부분을 거는 쇠줄이었다.
로널드 레이건호가 만재(滿載) 배수량이 9만7천t에 달하는 아시아 최대의 항공모함이기는 하지만, 길이 333m에 불과한 해상 갑판에 비행기를 제대로 착륙시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에 비행갑판을 가로지르는 쇠줄에 착륙하는 전투기 등의 바퀴 부분이 걸리도록 해 제동력을 극대화한다. 착륙할 때 이 쇠줄에 바퀴 부분이 제대로 걸리게 하느냐 못 하느냐는 우수 조종사 여부를 판가름하는 핵심 중 하나다.
비행갑판의 중간 부분에는 사출장치(캐터펄트·catapult)가 놓여 있었다.
원래 '투석기'라는 뜻을 가진 캐터펄트는 300여m에 불과한 짧은 비행갑판에서 전투기 등이 안전하게 이륙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핵 항모의 원자로에서 만들어진 강력한 수증기의 힘으로 전투기를 급가속시켜 이륙을 돕는다.
로널드 레이건호의 8개 비행중대 전체를 지휘하는 마이클 오스제 대령은 "해상훈련에 일단 돌입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기의 이·착륙 훈련 등을 실시해 조종사의 역량을 최고조로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첫 항모인 랴오닝(遼寧)호와 자체 기술로 건조 중인 첫 국산 항모 '002함' 등은 사출장치를 장착하지 못했다. 이에 선수 부분을 높여 항공기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돕는 '스키점프' 방식을 사용한다. 아직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멀었다는 얘기다.
비행갑판에 있는 함교 아랫부분에는 '76'이라는 숫자가 조명 아래 밝게 빛나고 있었다. 76은 로널드 레이건호의 미 해군 분류 코드 'CVN-76'을 나타낸다.
미 해군의 항모는 1922년 취역한 첫 항모 랭글리호(CV-1)부터 64번째 항모 콘스털레이션호(CV-64)까지 'CV' 코드를 사용했다.
이어 65번째 항모 엔터프라이즈호를 건조하면서 디젤엔진 대신 원자로를 장착하게 되는데 이때 최초로 'CVN' 코드를 부여했다. N은 'Nuclear Propulsion' 즉 핵 추진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7월 취역한 차세대 핵 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는 미 해군이 가장 최근에 취역한 항모로서 'CVN-78' 코드를 부여받았다.
서태평양을 맡는 미 해군 7함대 소속인 로널드 레이건호는 일본 요코스카(橫須賀)에 배치된 제5항모강습단의 기함이다. 2기의 원자로를 이용한 4개의 증기 엔진이 뿜어내는 힘은 26만 마력에 달한다. 최대 속력은 30노트(시속 55㎞) 이상이다.
로널드 레이건호에는 현재 4천225명의 장병이 근무하고 있다. 비행부대 장교는 215명, 사병은 1천150명이며, 함대 장교는 160명, 사병은 2천700명이다.
미 해군에서 19년 동안 복무한 레이건호 수석 군목 양승현 중령은 "해상훈련을 나가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힘든 생활이지만 모두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한다"며 "로널드 레이건호는 가장 모범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항모로서 미 해군 내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미 항공모함의 홍콩 정박을 허용한 것은 2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4월 존 C. 스테니스호(CVN 74)가 홍콩 정박을 요청했으나, 당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던 중국 정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이번에 로널드 레이건호의 정박을 허락한 것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널드 레이건호를 위시한 항모강습단은 15일 전후로 동해에 출동해 우리 해군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탐지·추적·요격훈련(Link-Ex)을 강도 높게 할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건호가 소속된 제5항모강습단 전체를 지휘하는 마크 돌튼 소장은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는 지역 안보에 큰 위협을 던졌다"며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과 안전을 지키는 데 우리는 커다란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탐방에 동행한 유복근 홍콩 주재 총영사 대리는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는 미 해군의 핵심 전력을 실감할 좋은 기회였다"며 "앞으로도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유지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막고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s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