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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물량팀 노동자들 "황금연휴는 딴 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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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물량팀 노동자들 "황금연휴는 딴 나라 이야기"

거제·통영 곳곳 임금체불·농성…연말까지 줄줄이 폐업 '공포'

30대 물량팀장, 차 팔고 전세금 빼 팀원 손에 쥐어줘… "위암 말기 어머니 찾지 못해"

(거제=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경남 거제시의 한 조선소 하청업체 물량팀 팀장 임모(37)씨는 최근 차를 팔고 전세금을 빼 목돈 8천500만원을 마련했다.




하청업체와 물량팀을 연결해주는 브로커격인 '에이전시'가 "원청으로부터 받은 게 없다"며 한 달 치 월급을 주지 않자 자신이 함께 일하는 팀원 35명의 월급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체불임금 6천300만원을 팀원들에게 지급한 그는 남은 돈으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단칸방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당장 발등의 불은 껐으나 임 씨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4대 보험, 숙소비, 부가세 등이 1억원가량 남아 폐업 위기를 맞았다.

그런 그에게 추석 황금연휴는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원청에서는 하청업체에 대금을 모두 지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청업체, 에이전시를 찾아가면 받은 돈이 없다며 책임을 위로 전가해요.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덕분에 일도 모두 손에서 놓고 원청 앞에서 몇몇 동료들과 함께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고 회사 앞에서 숙식을 해결할 생각입니다."

경기도에 사는 임 씨의 어머니는 위암 말기로 한 달에 20일은 병원에서 지낸다. 그런 어머니에게 부담될까 그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도 못하고 있다.

그간 휴업수당이나 주말수당 등 각종 수당 한번 받지 못하고 장비나 의류도 모두 자비로 부담하며 팀원들과 일해온 그였다.

"저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주변에 부지기수입니다. 그나마 저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 어느 날 갑자기 폐업하고 사라지는 사람도 많아요. 문제는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용부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어요. 물량팀과 같은 비정규직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열흘간의 황금연휴를 앞두고 경남 거제와 통영,고성, 창원 등 대형 조선소와 협력업체들이 모인 조선벨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선업 불황으로 인한 폐업과 임금체불 등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경남지역 체불임금은 올 8월 말 기준 94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922억원보다 2.2% 증가했다.

피해 노동자 수는 2만7천35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117명보다 35.9% 급증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거제 성내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에서는 협력업체 4곳 중 3곳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평소라면 밀려드는 물량 때문에 분주해야 할 공단 내부에서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한 분위기까지 맴돌았다.

공단 내부로 들어오는 차량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손으로 꼽을 정도로 소수 직원만 공단 곳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인근 장평동에 위치한 한 조선업 협력업체 주변 도로에는 '체불임금 해결하라', '하청업체 대표 처벌', '원청이 하청업체 체불임금 해결하라' 등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임 씨의 동료 김모(37)씨 처지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도 최근 사비를 털어 자신과 함께 일하는 팀원 11명의 한 달 치 임금 1천300만원을 지급했다.

원래는 고향인 서울에 가 부모님을 뵐 계획이었으나 이를 단념하고 임 씨와 함께 연휴 동안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그는 "직장인들에게나 황금연휴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빨간 날이 더 부담스럽다"며 "각종 갑질과 무더위를 견딘 결과가 임금체불이라 생각하니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고 한탄했다.

물량팀에서 일하는 박모(52)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연휴에 나이가 많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노부모님께 설악산 구경 한번 시켜드리려고 했는데 체불임금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며 "이번 연휴에 일감이 많아 찾아뵙지 못한다고 둘러댔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현재 협력업체 폐업은 이제 시작이라며 올 연말까지 적어도 협력업체 30여 곳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와 같은 사례도 빙산의 일각이다. 물량팀과 같은 대다수 조선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이나 하청업체 눈치를 보느라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기 때문이다.

거제시 비정규직 근로자 지원센터 김중희 사무국장은 "상담을 받다 보면 임금체불만 아니라 일방적인 해고통보 사례도 많다"며 "대부분 조선업 경기침체로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해고통보를 받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을 상대로 노동부에 제출할 진성서 작성이라든지 해고자 구제신청, 체불임금 수령 등을 돕고 변호사나 노무사를 통해 법률 지원도 하고 있다"며 "앞으로 시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연구나 비정규직 실태조사도 진행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home122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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