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메모리 매각계약 체결…SK, 의결권·정보접근 제한(종합2보)
매각 금액 20조3천억원…반독점 심사·WD 소송 등 막판 변수
SK하이닉스 4조143억원 투자, 10년간 기밀정보 접근 제한
7개월 매각절차 일단락…애플 참여로 한·미·일 연합 '승기'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최현석 기자 = 혼전을 거듭한 끝에 SK하이닉스와 애플이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20조원 짜리 일본 거대 반도체회사 '도시바메모리'를 품게 됐다.
초반부터 인수전에 뛰어들어 결국 컨소시엄 형태로 투자에 참여하게 된 SK하이닉스로서는 전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입지를 확대하게 됐으나 직접적인 경영 참여나 기밀정보 접근 등은 제한을 받게 돼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일본 기업이 50% 이상 확보
도시바는 28일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주도하고 SK하이닉스 등이 참여한 한·미·일 연합과 메모리 사업 부문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도시바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베인캐피털 주도로 만든 인수목적회사인 K.K. 판게아(Pangea)와 도시바 메모리의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부채와 운전자금, 자본지출 추정치에 근거한 도시바 메모리 매각 금액은 2조엔(약 20조3천억원)이다.
한·미·일 연합 참가 업체 가운데 도시바가 3천505억엔, 베인캐피털이 2천120억엔, 호야가 270억엔, SK하이닉스가 3천950억엔, 애플을 비롯한 미국 투자자들이 4천155억엔을 각각 투자한다고 도시바는 설명했다.
이번 계약으로 도시바 등 일본 측이 판게아의 보통주 50% 이상을 확보하게 됐으며, 앞으로도 과반을 계속 유지할 예정이다.
또 일본 정부계 펀드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도 향후 판게아나 도시바 메모리에 투자할 의사를 표시했다. 이들은 도시바 메모리를 제3자에 파는 것을 반대해온 미국 반도체회사 웨스턴디지털(WD)과 도시바 간 소송 문제가 해결된 후 출자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바 메모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판게아의 인수 이후에도 베인과 도시바 메모리 경영진이 회사 운영을 주도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판게아는 금융기관과 은행으로부터 약 6천억 엔의 대출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 "중장기 협력기반 마련"
SK하이닉스는 전날 이사회를 열고 약 4조원 규모의 도시바 메모리 투자 안건을 의결했다. 총 투자금액 가운데 1천290억엔(약 1조3천억원)은 전환사채 형식으로 투자한다고 밝혔다.
다만 SK하이닉스는 향후 10년간 판게아나 도시바 메모리 의결권을 15% 초과해 보유할 수 없으며, 10년간 도시바 메모리의 기밀정보에 대한 접근도 차단된다.
동종 업체인 SK하이닉스가 인수자에 참여해 독점금지법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당초 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통해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영향력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SK하이닉스로서는 경영 참여나 정보 획득에 제한을 받게 됨으로써 당장 가시적 실익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다만 '글로벌 낸드 강자'인 도시바와 기술 협력과 제휴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큰 데다 투자수익도 일정 부분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의 반도체 시장 입지 확대를 일단 차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는 이날 계약 체결 발표와 관련,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우리 측이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단계를 밟으면서 잘 진행됐다고 본다"면서 "최종적으로 계약 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9부 능선'…반독점 심사·소송전 등 장애물
도시바는 다음 달 24일 임시주총을 열어 도시바 메모리 매각을 확정할 계획이다. 지난 2월 메모리 사업 매각 방침을 표명한 이후 약 7개월간 이어진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 '딜 클로징'(매각계약 완료)까지는 아직 간단치 않은 장애물이 남아있다.
일본과 미국, 중국 등 각국 반(反)독점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다 이른바 '반도체 굴기(堀起)'를 내세우며 반도체 산업에 공을 들여온 중국 당국의 반발도 예상된다.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웨스턴디지털(WD)이 조만간 국제상업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ICA)에 매각 일시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히면서 소송도 '변수'로 남겨둔 상태다.
이번 매각은 도시바가 미국 원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의 7천억엔 부실로 채무초과 상태에 빠지자 자본확충 목적으로 시작됐다. 내년 3월까지 채무초과 상태를 해소하지 못하면 도시바가 도쿄증시에서 상장 폐지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인수전에는 베인캐피털과 SK하이닉스 등이 손잡은 한·미·일 연합,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WD가 주도한 신(新) 미·일 연합, 대만의 훙하이정밀(폭스콘) 등 3개 진영이 경합했다.
지난 6월 말 우선협상자로 한·미·일 연합을 선정한 도시바는 지난달 말에는 WD가 포함된 신 미·일 연합으로 우선협상자를 바꿨으나 지난 13일 또다시 한·미·일 연합과 협상진행 각서를 체결한 뒤 지난 20일 한·미·일 연합에 매각하겠다는 이사회 결정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막판에 애플 등 미국 IT기업이 가세한 것이 한·미·일 연합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를 내놨다.
harri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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