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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휘둘리며 침체한 세운상가…우리 아직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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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휘둘리며 침체한 세운상가…우리 아직 살아있습니다"

"용산→테크노마트→가든5로 흩어지며 상권 무너져"

35년간 한 자리 지킨 권영길 사장이 본 세운상가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1982년 세운상가에 들어온 권영길(59) 동성전기통신 사장에게 '세운'은 그 뜻처럼 '세상의 운이 모두 모이는 곳'이 아니라 정치권 결정에 흔들리는 힘 없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특수 인터폰·통신기기를 제조하는 권 사장은 직원으로 일하다 2000년 사장이 됐다. 1년 전부턴 세운상가 상인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권 사장은 "정치권과 서울시 정책에 따라 크게 세 차례 상인들이 내몰리면서 탄탄했던 상권이 무너졌다"고 35년간의 쇠락을 돌아봤다.

권 사장이 처음 일을 시작한 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상가 전체가 '전자산업의 메카'로 호황을 누렸다.

그가 목격한 첫 번째 침체는 1980년대 후반 찾아왔다.

정부가 1987년 용산역 서부 청과물 시장을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세운상가 상점들을 이전해 용산전자상가를 만드는 계획을 세우면서다.

새롭게 떠오른 용산으로 상인들이 대거 이동하면서 점포가 줄줄이 비고 상가는 활기를 잃었다.

IMF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상황에서 1990년대 말 새로 생긴 서초구 남부터미널역 국제전자센터와 강변 테크노마트로 상인들이 또 한 번 흩어지면서 두 번째 타격이 왔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세운상가 상권이 침체 일로를 걸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계천 복원 계획과 함께 청계천과 세운상가 상인들을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로 옮겨 놓는다는 계획이 세워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 후 재개발하기로 하고, 그 첫걸음으로 2009년 종로 대로변과 접해있던 현대상가를 철거했다. 상인들에겐 가든파이브 이사를 권장했다.


권 사장은 "가든파이브에 갔던 상인들은 결국 적자를 많이 보고 다시 세운상가로 돌아왔다"며 "평생 노후 걱정 없이 살만큼 돈을 번 사람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고 말했다.

권 시장이 보는 세운상가의 경쟁력은 '집적'이다. 여러 제조업체가 한 곳에 몰려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는 "내가 세운상가를 지키는 이유는 아직도 인터폰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10분 내로 모두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물론 시대의 흐름 때문에 상가가 쇠퇴한 점도 있지만, 한곳에 모여있던 제조업체들이 분산되며 상권 전체가 무너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직원 10명을 뒀던 권 사장 업체 직원은 지금 3명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하겠다고 발표하자 권 사장도 세운상가를 떠나 금천구 가산동 디지털단지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었다. 공장으로 이용할 작은 사무실도 구했다.

그는 "우리 같은 중소업체는 주문받는 즉시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시간이 돈"이라며 "변두리로 가면 부품을 공급받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리는 데다 단가도 높아져 결국 세운상가에 머물게 됐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세훈 전 시장이 세웠던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을 백지화하고 세운상가 건물을 존치하기로 했다. 건물을 깨끗하게 리모델링해 '찾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청년 창업가들을 입주시켜 상가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게 박 시장 계획이다.

세운상가 존치에 대한 상인들의 찬반은 엇갈린다. 오세훈 전 시장의 전면 철거 후 재개발 계획에는 당시 추산으로 1조4천억원의 세금이 투입되지만, 박 시장의 '재생'에는 지금까지 535억원이 들었다.


상인 협의회 회장으로서 권 사장의 큰 걱정은 임대료 오름세다.

그는 "상생 협약을 맺어 임대료를 올리지 말자고 약속했지만, 개인 재산이니 강제할 수 없다"며 "상인들이 힘을 모아 상가를 가꿔 놨더니 (임대료 상승으로) 뒤통수를 맞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바람은 다시 태어난 세운상가가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권 사장은 "서울시가 현대상가를 헐면서 대대적으로 세운상가를 없앤다고 홍보해 세운상가에서 일한다고 하면 '아직도 그곳이 남아있냐?'고 놀라워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운상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찾아오는 사람을 늘리는 방법밖에 살길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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