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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절름거리며 걷는 여행…독자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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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절름거리며 걷는 여행…독자의 연대기

신간 '은유가 된 독자'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중세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올바른 길로 가려면 '지식'과 '정서'라는 영혼에 달린 두 발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길을 잃었을 때는 꿋꿋이 걷기보다 차라리 절름거리는 편이 낫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광팬이던 단테는 이를 받아 '신곡'에서 절뚝거리며 걷는 자신에 대해 "나의 오른발이 늘 짧다"고 썼다.

세계적인 애서가로 이름난 아르헨티나 출신 캐나다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신간 '은유가 된 독자'(행성B 펴냄)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단테를 언급하며 독서를 절름거리며 걸어가는 순례자의 여행에 비유한다.

모름지기 독서란 여행과 같은데, 그것은 목적지를 향해 성급하게 걷거나 뛰는 것이 아니라 마치 피곤하고 지친 순례자처럼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유익한 독서를 위해선 짝이 맞지 않아 불편한, 이성과 감정이란 사고의 두 다리로 절뚝거리며 걷는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은 5천여 전 문자가 발명된 이후 지금까지 변천해온 독서와 독자의 개념을 추적하며 진정한 독서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 저자가 글쓰기와 독서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원리라 믿는 메타포(은유)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여기에 기원전 1750년에 쓰인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 셰익스피어의 '햄릿',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세스 노터봄의 '유목민의 호텔'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학사의 문제작들이 총동원된다.

이를 통해 '여행자', '상아탑 속 은둔자', '책벌레'라는 역사적으로 독자를 규정지어온 세 가지 원형적 개념을 찾아낸다.

독자를 텍스트를 여행하는 여행자로 보는 건 가장 오래된 생각이다. 이 같은 은유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등장한다. 일찍이 고대인들은 세상을 신의 말씀이라 여겼으며,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은 신을 성서라는 종이책과 세상이란 자연책의 저자로 생각했다. 따라서 삶은 세상이란 텍스트를 여행하는 일로 봤으며, 세상의 경험을 담은 책을 읽는 일도 여행에 비유했다.

고대 그리스의 전통에서는 고독한 자아 성찰을 진리를 찾는 방법으로 여겼으나, 중세 기독교도들은 은둔과 고립이 태만과 나태를 낳는다고 봤다. 저자는 햄릿을 상아탑에 갇혀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지식인(독자)의 원형으로 해석한다.

상아탑은 19세기 들어 '세상에서 벗어난 독자의 지적 안식처'라는 긍정적 의미를 지니기도 했지만, 이내 현실을 외면하고 세상의 의무를 기피하는 부정적인 공간으로 바뀌었다.

책을 사랑하거나 책에 걸신들린 독자를 의미하는 책벌레는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받는 '돈키호테'에 잘 형상화돼 있다. 돈키호테는 수면 부족과 과잉 독서로 뇌가 바싹 말라붙어 제정신을 잃은 책벌레로 자신이 읽은 스토리를 현실로 착각한다. 이 같은 돈키호테 캐릭터는 열혈 독서광인 '보바리 부인'의 엠마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로 이어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독서광인 저자는 책벌레가 과거에도 부정적인 의미만을 내포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독서하는 피조물'이다. 단어를 섭취하고,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어가 존재의 수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단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자아도 확인한다."

다만, 스크린과 하이퍼링크로 이뤄진 전자책과 새로운 상아탑이 된 인터넷 서핑 공간에 대해선, 독서의 물리적 성격과 명상, 사색을 상실하게 한다는 점을 들어 경계심을 감추지 않는다.

양병찬 옮김. 192쪽. 1만5천원.

abullap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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