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30분 내내 '위태위태'…자기 주장뿐 경청은 '실종'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두 번째 토론회가 5일 열렸지만, 고성과 야유가 오가면서 파행이 이어졌다.
5일 저녁 옛 공진초 부근 탑산초등학교에서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지역주민과 장애아 학부모들 사이에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반대 주민 가운데 일부는 토론회장에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는 손팻말이 보이자 "장애인들이 왜 이리 많냐", "강서구민인지 신분증을 확인하라"고 외쳤다.
장애아 학부모와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은 고함과 함께 강하게 반발했고, 일부는 "신분증 확인할 거면 (압수수색) 영장을 갖고 오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험악한 분위기에서 가까스로 시작된 토론회는 진행이 순탄치 않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모두발언을 하자 장애아 부모들 쪽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고,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공진초 자리에 국립한방의료원 설립을 공약으로 내건 이 지역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발언할 때는 반대로 주민들이 함성과 박수를, 장애아 부모들이 야유를 보냈다.
조 교육감은 "주민들께 어려움을 드려 죄송하지만 교육감은 장애인 교육권과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법적 책무가 있다"며 "토론회를 통해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고 접점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립한방의료원은 지역발전을 위한 중요한 사업"이라며 "지역 의료 복지와 역사적 의미 차원에서도 공진초 자리가 가장 적격지"라고 주장했다.
가양동은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의 출생지로, 허준박물관과 허준 테마거리가 조성돼 있고, 대한한의사협회도 공진초 터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양쪽 대표의 발언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자 분위기는 더욱 격앙됐다.
주장만 소리 높여 외칠 뿐 상대방의 발언을 경청하는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친 비난과 야유가 계속됐고 패널들이 앉은 무대 앞을 막아서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쏟아내기도 했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손성호 위원장은 "주민들 의사를 무시하고 공진초 자리에 특수학교 설립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지역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비대위 대표들은 특수학교 설립을 전제로 한 토론회 대신 학교 부지 활용 방안 차원에서 사업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강서구민 주민투표를 통해 학교 설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비대위는 "특수학교 설립 절차를 계속 진행한다면 토론회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학교 설계 공모 중단을 요구했다.
장애 학부모 대표로 나선 이은자 씨는 "장애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2시간이나 걸려 학교에 가야 하는 사정을 헤아려 달라. 길을 가다 욕을 먹어도 좋고 맞아도 좋지만 학교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장애인도 강서구 내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장애를 먼저 보지 말고 학생으로서 봐달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다른 장애아 부모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맞춰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며 "당연한 사실이 당연히 여겨지지 않는 현실이 서글프다. 상생의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장애아 부모들은 "서로 접점을 찾아 문제를 풀어보자"며 지역주민들 앞에서 단체로 큰절을 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 7월 6일 열린 1차 토론회처럼 시작도 못 한 채 무산되지는 않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오후 7시30분 시작한 토론회는 10시 넘어서까지 계속됐지만 견해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토론회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더 이상의 토론은 의미없다"며 하나둘 퇴장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접점을 찾으면 설계변경도 가능하다. 주민대표와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를 계속하자"며 황급히 마무리 발언을 했지만 이미 대다수가 자리를 뜬 뒤였다.
조 교육감은 토론회장을 나오면서 서울교육청 앞에서 '임용 절벽' 항의 집회를 마치고 면담하러 찾아온 서울교대생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k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