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손편지에 사라지는 빨간 우체통…"서로에게 위안을"
휴대전화·SNS메시지 영향
느린우체통·학폭막는 분홍우체통 등 눈길
(광주=연합뉴스) 전승현 기자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중략)…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고은 시인의 시 '가을편지'다. 가을 이맘때면 노래로도 널리 불려 서정(敍情)을 북돋는다.
1990년∼2000년까지만 해도 펜팔 친구에게, 군대 간 애인에게, 도시로 유학 간 자녀에게, 고향에 계시는 부모에게 펜으로 꼭꼭 눌러쓴 손편지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보급이 확대되는 등 통신수단이 발전하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메시지가 보편화하면서 손편지는 귀한 몸이 됐다.
시골 초등학생들이 대통령에게 또는 학교 선배인 국가대표 선수에게, 70대 촌로가 30년이 지난 후 훔친 물건값을 갚으면서 슈퍼마켓 주인에게 쓴 '손편지들'이 화제가 될 정도다.
전남지방우정청은 손편지 통계는 작성하지 않지만, 집배원들의 전언 등에 따르면 손편지 물량은 시간이 흐를수록 줄고 있다고 5일 밝혔다.
전남지방우정청 관계자는 "10∼20년 전과 비교해 손편지 물량은 대폭 감소했다"며 "요즈음 집배원들의 경우 등기, 각종 고지서 배달 업무가 많고 선거 때면 공보물 업무가 가중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10년 전 길거리에 쉽게 볼 수 있었던 빨간 우체통도 줄어들고 있다.
전국에 설치된 우체통은 2008년 1만5천889개를 정점으로 2010년 1만5천532개, 2013년 1만4천811개, 2016년 1만3천947개로 감소했다.
광주전남에 설치된 우체통도 2007년 2천473개를 최고로 2010년 1천975개, 2013년 1천962개, 2016년 1천551개로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빨간 우체통을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수 있다.
이러한 '아날로그 빨간우체통'이 점차 사라지는 자리를 '느린우체통' '학교폭력 막는 분홍우체통'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우체통이 조금씩 메우고 있다.
유·스퀘어를 운영하는 금호터미널은 매년 겨울 유·스퀘어 1층 영풍문고 앞 실내공간에 느린 우체통 'Happy U·Letter'를 운영하고 있다.
'Happy U·Letter'는 자기 자신, 가족, 연인에게 편지를 쓰면 1년 후 해당 주소지로 발송해주는 유·스퀘어의 무료 이벤트다.
경기 안산시 선일초등학교과 군포시 양정초등학교는 지난해 '분홍우체통'과 '마니또 우체통'을 설치했다.
학생들이 SNS 메시지 대신 친구들에게 또박또박 안부를 전하는 손편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SNS메시지와 같이 순간순간 이뤄지는 대화보다 손편지를 통해 감성을 나눌 기회를 제공하면, 언어폭력이나 왕따 등 학교폭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에서 우체통 프로젝트를 고안해냈다.
주부 정모씨는 "북핵문제, 물가상승, 각박해진 인심 등 국가·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라며 "좋은 계절을 맞아 손편지라도 쓰면서 서로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행복을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shch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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