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로 한미FTA '화약고' 건드려
공동위서 쇠고기 등 농업 관세 즉각 철폐 요구…쌀까지 넘보나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미국이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의 가장 민감한 분야 중 하나인 농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농민 반발 등을 우려해 농산물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는데, 미국은 첫 대화에서부터 농산물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4일 미국 무역 전문지 '인사이드 US 트레이드'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공동위원회에서 한국에 농업 분야 관세를 바로 철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국산 농산물에 부과하는 관세는 한미 FTA에 합의한 철폐 기간을 5~10년 연장해달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체결 당시 쌀을 비롯한 민감 품목 16개를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다.
관세를 완전히 철폐할 경우 심각한 영향이 우려되는 품목은 현행 관세를 유지하고 일정량의 관세율할당(TRQ)을 제공하거나 계절관세를 부과했다.
578개 품목은 발효 즉시 관세를 철폐했지만, 나머지 1천499개 품목은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했다.
한미 FTA 발효 5년이 지난 지금 아직 관세가 남은 농산물은 545개 품목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이들 품목의 즉각적인 관세 철폐를 요구한 것이다.
대표적인 품목은 쇠고기로 협상 체결 당시 15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쇠고기는 한국이 농업 분야에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수입한 단일 품목으로, 지난해 수입 규모는 10억3천500만 달러였다.
이런 영향으로 올 1∼5월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48.4%까지 높아지며 호주산(42.8%)을 앞질렀다.
치즈, 버터, 설탕, 호두, 닭고기, 사과, 배, 마늘 등도 아직 관세 기간이 남았다.
다만 미국은 공동위원회에서 양허 제외 대상인 쌀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한미 FTA 체결 협상을 통해 쌀이 가장 민감한 품목이라는 점을 학습했기 때문에 쌀만큼은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협상이 진행되면서 미국이 협상력 확보 차원에서라도 쌀을 건드릴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미국은 한미 FTA 발효와 동시에 1천65개 품목의 관세를 철폐했다.
6년 이상의 시간을 거쳐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품목이 337개다.
미국은 이들 품목의 관세 철폐 기간을 5~10년 연장하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미국이 농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한 것은 국내 산업계 지지를 얻으면서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무역적자를 해소하려면 수입을 줄이거나 수출을 늘리는 방법이 있는데 수입 규제는 수입 원자재와 소비재에 의존하는 미국 산업이나 소비자 반발을 살 수 있다.
반면 농업 분야는 미국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품목이 많으며 한미 FTA를 통해 가장 혜택을 봤다.
이 때문에 미국축산협회와 북미육류협회, 미국육류수출협회 등 미국 3대 쇠고기업계 단체장들은 지난달 22일 미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현행 FTA 유지를 옹호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농림축산물 분야의 대미(對美) 수출 규모는 7억1천6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수입은 68억5천200만 달러에 달해 무역적자 규모가 61억3천6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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