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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인생플랜] (25) 대기업 부장→사업가→도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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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인생플랜] (25) 대기업 부장→사업가→도배 봉사자

대기업 16년 근무 후 사업가 변신 최경현씨 "나눔은 한없이 기뻐"

도배기능사 자격증까지 취득…소외계층에 '러브하우스' 선물 봉사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은퇴 후 봉사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습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경기도 수원시 종합자원봉사센터 소속 '또봄 주거환경개선 봉사단' 총무 최경현(57)씨의 말이다.

그는 매달 한 차례 소외계층을 찾아 새집을 선물하는 '사랑의 도배사'다.


대기업 간부로, 또 사업가로 평생을 일해온 최씨는 원래 도배의 '도'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1986년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에 입사해 16년간 근무하다가 2002년 부장 때 퇴직했다.

이어 2008년까지 서울에서 차량 일부를 조립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을 경영했으며, 이후 현재까지 수원에서 경영 컨설팅 사무소를 운영해오고 있다.

그런 최씨가 도배사로 변신한 계기는 2014년 9월 수원시 종합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베이비붐 세대(은퇴자) 도배 자원봉사단 육성을 위한 무료교육' 공고였다.

그는 "10여 년 전 뉴스에서 한 봉사단이 달동네를 돌며 도배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당장에라도 도배 봉사에 나서고 싶었으나 기술이 없는 데다 관련 봉사단을 찾지도 못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출소자 갱생 보호사업, 홀몸노인 후원, 청소년 범죄예방 등 다른 봉사활동을 하던 최씨는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원 마감 날짜가 지난 상태였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며 진심을 담은 이메일을 담당자에게 보내 "참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경기직업학교에서 5주간 진행된 도배 교육에는 최씨를 비롯한 은퇴자(1955∼1963년생) 12명이 참여했다.

이 중 6명이 끝까지 교육을 이수해 또봄 도배 봉사단을 만들었다.

'또봄'은 '또다시 봄날'의 준말이다. 봉사를 통해 얻은 보람으로 은퇴 후 인생 2막을 펼쳐 보이겠다는 뜻이 담겼다.

도배 교육을 착실히 수료했으나, 실전에서는 일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도배 봉사에 나선 2014년 11월 수원시 장안구 80대 할머니 집에서 최씨 등은 방 2곳, 거실 겸 주방 1곳이 있는 16평 남짓한 공간을 도배하는 데에 무려 9시간을 소요했다.

최씨는 "도배가 서툴러 점심을 거르고 작업했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6명의 회원이 10만원씩 갹출해 도배지와 풀을 비롯한 각종 재료도 구매하는 등 어려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을 마치고 느끼는 뿌듯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특히 깔끔하게 단장된 새집을 보고 기뻐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최씨가 도배 봉사에 전념하는 자극제가 됐다.

도배 봉사를 하면서 잊을 수 없는 기억도 많다.

2015년 11월 수원시 팔달구 소재 하반신 마비로 걷지 못하는 40대 장애인 여성 의 집을 찾았을 때 깜짝 놀랐다.

집안 벽지 곳곳은 새카맣게 곰팡이가 피었고,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우미가 일주일에 한 번만 방문하고 있어, 이 장애인 여성은 남은 엿새 동안 모든 생활을 앉아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봉사단원들은 도배뿐만 아니라 장판, 출입문 등 대대적인 주거환경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8시간에 걸쳐 작업했다.




1층에서 기다리다가 확 바뀐 집 안 모습을 본 장애인 여성은 연신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최씨를 비롯한 봉사단원들도 함께 울었다.

최씨는 "장애인 여성이 '내가 살면서 이런 도움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라고 눈물을 쏟았다"며 "소외계층을 한 분이라도 더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봉사횟수가 늘수록 그의 실력도 늘어갔다.

최씨는 집에 도배 연습용 방 모형을 설치해놓고 1년여간 실력을 갈고닦은 끝에 지난해 6월 도배기능사 자격증도 따냈다.

그는 "집안 눈치도 보였지만, 한해 두 차례만 있는 실기시험에 2번 도전 끝에 자격증을 땄다"며 "도배를 업(業)으로 생각했다면 포기했을 텐데,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끝장을 봤다"고 말했다.

그 사이 봉사단 규모는 급팽창했다.

2014년 6명이던 봉사단원은 2015년 11명, 지난해 20명, 올해 들어서는 40명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

봉사를 마치고 보람을 느낀 봉사단원들이 너도나도 지인을 추천한 덕이 컸다.




도배장판 시공, 전기주거설비, 타일, 페인트 등 각 분야 경력자들이 들어오면서 지난해 상반기부터는 '도배' 봉사단이 '주거환경개선' 봉사단으로 탈바꿈했다.

이 시기 최씨의 벽지 구매 취지를 들은 한 벽지 회사가 4년간 도배 봉사가 가능한 벽지 33박스(방 2개 기준 40세대분)를 기부하는 등 주변의 도움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만 3년째 현장 실사, 주거환경개선, 사후 점검까지 봉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최씨는 나눔 실천에 남은 인생을 다 쓰겠다고 말한다.

최씨는 "봉사 후 다시 찾은 한 할머니의 집에서 휴지에 둘둘 만 물병을 받았다. 할머니는 '자식도 안 쳐다보는 나를 찾아 집을 고쳐줘서 고맙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말했다"며 "우리 사회에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 내가 할 수 있는 일, 도배를 계속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ky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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