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하다 구조하고, 보트 끌고 나오고…시민이 휴스턴 살렸다
'하비' 강타 지역에 평범한 이웃들 도움의 손길…"텍사스 주민을 하나로"
중계 제쳐두고 생명 구해…"언론인이기 전에 인간"
[https://youtu.be/l9ML8YCQUGE]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초강력 허리케인 '하비'가 퍼부은 비로 쑥대밭이 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시내.
엿새 동안 퍼부은 비로 물이 허리춤까지 차오른 도로에서 보트를 타고 '어슬렁거리는' 무리가 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주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선 이웃들이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하비 피해 현장에서 주민 구조를 위해 즉흥적으로 결성된 자원활동가들과 동행 취재한 이야기를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주민들은 평소 여가생활을 위해 즐겼던 에어보트를 비롯해 모터를 장착한 낚시용 배, 제트스키 등을 끌고 나왔다. 헤드램프와 판초우의 등 '장비'를 갖추고 수색, 구조활동을 벌인다.
휴스턴에서 190㎞ 떨어진 러프킨에서 온 에릭 모디세테(29)는 오기 전 망설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무슨 일이 있건 상관없었다. 그들이 우릴 필요로 하니까."라고 답했다. 군인 출신인 그는 건설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러프킨에 사는 그의 이웃과 친척들도 보트를 트레일러에 싣고 동행했다.
모디세테는 "28일 오전 1시부터 지금까지 총 81명을 구했다. 개 6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빗물이 많은 것을 삼켜버린 상황에서 길을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램프로 불을 비춰보지만 흙탕물 속은 알 수 없다. 모디세테는 "도로를 상상하면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잠은 부족하고 배도 고픈 열악한 상황이다. 보트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발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모디세테가 탄 보트는 버려진 주유소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가족을 만났다. 호세 랭겔은 "피난민 같았다. 항상 TV에서 보면서도 우리한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우리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모디세테는 "텍사스 주민들이 함께 뭉쳤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원칙적으로는 현장을 객관적으로 전해야 하는 기자들도 하나가 됐다.
AP통신은 중계 임무를 띠고 재난 현장에 나왔지만 주민 구조를 우선으로 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조명했다. 보트를 타고 취재에 나섰다가 직접 주민들을 태우기도 하고, 소셜미디어로 가족과 연락을 돕기도 한다.
AP는 "대부분의 기자는 그들의 보도하는 사연에는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하비 때문에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상황과 남아있는 주민들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CBS 뉴스의 데이비드 베그나우드 기자는 디지털 스트리밍 방송을 하던 중 집 안에 있던 주민을 보고는 자신이 타고 있던 보트에 그들을 태웠다. 이 모습은 그대로 온라인으로 중계됐다.
그는 "나는 언론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오전 CBS 계열의 KHOU-TV의 브랜디 스미스 기자는 침수된 스튜디오를 피해 고가도로에서 폭우를 맞으며 생방송 중계 중이었다.
방송 도중 그는 불어난 물속에 탱크로리 트럭 운전자가 갇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운전자에게 나오라고 소리치고는 다급히 지나가던 경찰차를 세우고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들은 차에 매달고 있던 보트를 이용해 운전자를 무사히 구조했다. 이 모습은 실시간으로 전파를 탔다. 다급하게 상황을 전하는 스미스 기자의 음성이 떨렸다.트럭에서 빠져나온 남성을 맞은 그는 "좀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안아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와 보트를 타고 현장에 나선 CNN 에드 라반데라 기자 역시 주민을 구조하는 모습이 그대로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라반데라 기자는 "관찰자 입장을 견지하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이들을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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