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미사일 도발로 美대북정책 시험대…외신 "긴장 재점화"(종합)
대화보다 압박에 무게 실릴 듯…"트럼프에게 직접적 도전"
日영공 통과, 미·일 균열 노림수…'수도 평양 인근서 발사' 사실도 주목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김연숙 기자 = 북한의 29일 탄도미사일 발사로 한동안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던 북미 관계가 다시 긴장의 파고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이날 미사일 도발은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이 지난 2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평화적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며 대화 의지를 피력한 지 불과 이틀만에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22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에서 "그(김정은)가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긍정적인 무엇인가가 일어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로 이같은 최근의 기류가 급격히 얼어붙을 것으로 우려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도 당분간 대화보다는 압박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관련 기사에서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비행했다고 전하면서 "김정은 5년 집권 하에서 가장 뻔뻔한 도발이자 평양과 외부 세계 사이의 긴장을 재점화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싱크탱크 국가이익센터(CNI)의 해리 카지아니스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무모한 도발"이라고 부르면서 "북한은 트럼프 정부의 압박이나 협박과 관계없이 신형 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의 발사체가 2009년 4월 대포동 2호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영공을 통과했다는 점도 역내 안보 위험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성 발사라는 명분을 내세웠던 대포동의 경우 일본에 미리 통보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통보가 없었다고 WP는 전했다.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에서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를 지낸 에이브러햄 덴마크는 WP에 "이번 발사는 훨씬 더 위험한 유형의 시험"이라며 "북한의 미사일은 비행 중 분리되는 습성이 있는데 만약 그중 하나라도 일본에 떨어진다면 사실상 일본에 대한 공격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7년의 집권 기간 중 16발의 미사일을 쏜 부친과 달리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올해에만 무려 18번 발사를 감행한 것은 '도발을 멈추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명백히 거부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미국과 일본이 홋카이도에서 '노던 바이퍼' 연합군사훈련을 끝낸 다음 날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는 일본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일 수 있다고 CNN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과 일본, 한국 간에 균열을 노리는 북한의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 비영리 과학자단체인 '참여과학자모임'(UCS)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라이트 선임연구원은 CNN에 "미사일이 일본까지 날아간 것은 엄청난 일"이라며 "북한은 최근 몇 년간 고도를 높이더라도 (일본 영공을 지나는 것은) 피해왔고, 북한은 인공위성을 동쪽으로 쏘는 게 더 효율적인데도 남쪽으로 쏘아 올렸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황이 가열되는 현시점에 미국이 대북 외교에 대한 일본의 지지를 받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발사는 또 북한을 '말폭탄' 타깃으로 삼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북한 미사일이 사거리 3천 마일(약 4천800㎞)의 화성-12호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미국령 괌을 사정권에 두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에 북한이 '괌 포위사격' 위협으로 응수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록 괌이 위치한 남쪽이 아닌 동쪽으로 발사하기는 했지만, 언제든 미국 영토를 쉽게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시험발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요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사일 발사를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세계에 경고신호를 보내는 일련의 직접 도발 중 최신판"이라고 진단했고, 로이터 통신은 "한반도 긴장을 급격하게 끌어올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괌에 있는 미 앤더슨 공군기지는 북한 미사일을 '실시간으로' 감지했지만, 괌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부소장은 WSJ에 "미국이 이번 도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한국과 일본이 면밀히 관찰할 것이고 이는 동맹관계에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괌에 대한 위협에 강력하게 대응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 미사일 발사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면,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약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한국과 미국의 연합 군사훈련에 대한 불만과 항의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AP 통신은 "미국의 가까운 우방(일본) 영공을 통과한 공격적인 시험 비행은 워싱턴과 서울의 '워게임'이 진행되는 가운데 명백한 반항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 연합훈련 때마다 북한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무기 시험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의 '말의 전쟁'으로 어느 때보다 적대적인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에 이 통신은 주목했다.
NYT는 이번 미사일 발사가 평양 순안 일대에서 발사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근 미국 안에서 북 선제타격론이 제기된 시점에 북한이 수도 외곽에서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북한 타격에 대한 미국의 위협을 더욱 복잡하게 할 수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미국이 실제로 선제타격에 나서더라도 민간인 살상 피해를 주고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지난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한미 연합훈련을 긴급의제로 다뤄달라고 요구한 직후에 연이어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도 UFG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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