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사태 1년] ① 밀려난 '해운 강국'…충격파 여전
국적선사 선복량 105만→39만TEU…미주노선 점유율도 '반토막'
글로벌 경쟁 선사들 M&A 통한 '몸집 불리기' 경쟁…"중장기 지원책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봉준 김동규 기자 = 국내 1위, 세계 7위 글로벌 해운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1년이 지났다.
시장 논리로만 보면 글로벌 해운업 불황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침몰한 셈이지만, 전체 해운 산업 측면에서 보면 아쉬운 점도 많다.
세계 해운 강국들이 해운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인식하고 자국 선사의 생존을 위해 팔을 걷고 지원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국내 최대 선사의 파산으로 한때 세계 해운 시장을 호령하던 한국은 이제 변방으로 밀려날 위기를 맞았다.
국내 유일의 메이저급 선사로 남은 현대상선(글로벌 13위)이 고군분투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 한진해운 선박·노선·네트워크 '공중분해'
지난해 8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는 소식에 글로벌 해운업계는 이를 충격이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반겼다.
선복량(화물적재 능력) 공급 과잉으로 '치킨 게임'이라 불릴 정도의 저가 운임 경쟁이 계속되던 세계 해운 시장에서 7위 선사의 침몰은 남은 선사들에겐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글로벌 해운 시장은 한진해운 파산 이후 공급과잉 문제가 일시적으로 해소되면서 최근 계절적 요인과 겹쳐 운임이 상승하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해외 선사들 사이에서는 한국 정부가 강력한 경쟁자를 제거해 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파산 전까지 한진해운이 운영하던 컨테이너선 100척과 벌크선 44척 등 144척 규모의 선대는 공중분해 됐다.
금융 당국의 기대대로 국적 선사인 현대상선과 SM상선이 이를 일부 인수하긴 했지만, 핵심 자산인 1만3천TEU급 선박 9척은 덴마크의 머스크(6척)와 스위스의 MSC(3척) 등 외국 선사가 나눠 가졌다.
한진해운이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노선도 국내 선사가 온전히 물려받지 못했다. 한진해운은 북미 20개를 비롯해 아시아 30개, 유럽 13개, 호주 4개, 남미 3개, 대서양 1개 등 총 71개 노선을 운영했다.
이 가운데 미주·아시아 노선은 SM상선에 인수됐지만, 유럽 노선 등은 청산됐다.
한진해운 국내외 전용 터미널의 경우도 현대상선과 SM상선이 10곳을 나눠 인수했다. 그러나 '알짜'로 꼽히는 미국 롱비치터미널은 스위스의 MSC 손에 넘어갔다.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현지 신뢰를 쌓은 지역본부와 지점과 대리점 등 네트워크 165개도 이제는 활용할 수 없는 자산이 됐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28일 "앞으로 한진해운 규모의 선사를 다시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업 측면에서 잃은 유무형 자산이 많다"며 "정부가 해운업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금융논리를 앞세워 파산을 결정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 글로벌 경쟁사, 선복량 키우려 M&A '집중'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정부가 해운업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재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각종 지표를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글로벌 선사의 전체 선복량은 작년 8월 105만TEU(한진해운+현대상선)에서 올해 8월 39만TEU(현대상선+SM상선)로 63%나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상위 선사들이 선복량을 늘리려 인수합병(M&A)과 대형 컨테이너선 발주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해운업계는 맥 없이 뒤처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 한진해운 파산 이후로 세계 해운사들은 합종연횡을 이어가고 있다.
머스크는 독일 함부르크 쥐트를 40억 달러에 인수했고 일본 3대 선사인 NYK(니폰유센), K라인(가와사키기센), MOL(미쓰이OSK)은 컨테이너 부문을 합쳤다. 프랑스 CMA-CGM은 싱가포르 선사 넵튠오리엔트 라인을 25억 달러에 인수했다.
지난달 중국 최대 국영 해운사인 코스코는 홍콩 OOCL을 인수하면서 머스크, MSC에 이어 세계 3위 선사로 우뚝 섰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당시 업계에서도 1·2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재무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키웠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면서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재 현대상선이 100만TEU급 대형 선사를 꿈꾸며 선박 신조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당분간 한진해운의 공백을 메우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당장 컨테이너선을 발주해도 건조 후 인도까지 3∼4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에 가장 중요한 지표인 미주노선 점유율도 1년 새 반 토막이 났다.
미국의 유력 해운전문지 저널오브커머스(JOC)의 자회사인 '피어스'(PIERS)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선사의 미주 점유율은 작년 6월 10.9%(한진해운 7.1%+현대상선 3.8%)에서 올해 6월 5.8%(현대상선)로 5.1%포인트 감소했다.
현대상선 점유율만 보면 2%포인트 늘어난 것이지만, 한진해운 물량을 일부 확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상선이 흡수하지 못한 5% 가량은 다른 경쟁 선사들이 나눠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미주 서안의 점유율만 놓고 보면 현대상선은 올해 6월 7.4%로 작년 같은 달(4.1%)보다 3.3%포인트 상승했고, 순위는 지난해 11위에서 올해 4위로 7계단 상승했다.
정부도 한진해운 사태 이후 해운업 재건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새 정부 출범 후 100대 국정과제로 '해운강국 건설'을 선정하는 등 지원책을 내놨다.
국내 14개 선사가 결성한 한국해운연합(KSP) 출범을 측면 지원하고, 내년 6월 목표로 금융·정책 지원을 맡을 한국해양진흥공사 출범을 준비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정책이 효과를 거둘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운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해운업계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해운업 특성을 고려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dk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