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평 집을 30년째 개조 중인 홍콩 디자이너가 말하는 '공간'
'도메스틱 트랜스포머'로 유명한 게리 창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홍콩섬 동쪽 사이완호(西灣河)에는 30년이 넘도록 개조 중인 전용면적 32㎡(9.68평)의 집이 있다.
1960년대 지어진 17층짜리 낡은 아파트에 있는 이 작은 집의 주인은 건축 디자이너 게리 창(55)이다. 게리 창이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은 14살 때인 1976년이었다.
"당시 어머니, 아버지, 3명의 여동생과 저까지 여섯 식구에다가 방 하나는 세를 줘서 하숙생이 있었으니 7명이 살았죠. 다른 가족이 이사를 나가기 전까지 12년을 그렇게 보냈죠."
1988년 홍콩대 건축학과를 막 졸업한 게리 창에게 어머니는 '네가 이 집을 사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자신의 집을 건축적 실험 대상으로 삼은 '도메스틱 트랜스포머'(Domestic Transformer)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는 움직이는 벽과 패널을 활용해 작은 집을 24개 방을 가진 공간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고, 개조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9년 전 진행했던 작업을 소개한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100만을 돌파할 정도로 화제를 낳았다. 그는 현재 엣지 디자인 인스티튜트(EDGE)를 운영하면서 홍콩뿐 아니라 일본, 중동 등 각국의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좁은 집에서 살았던 경험이 건축을 공부할 수 있게끔 유도한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건축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공부하기 전부터 저는 '좁은 집'이라는 주제를 40년째 공부해온 셈이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홍콩 디자인 순회전 '컨플러스·20+'참석차 한국을 찾은 게리 창을 25일 전시장에서 인터뷰했다.
이번 전시는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서울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홍콩의 낡은 아파트들은 높은 인구밀도와 주거공간 부족 문제를 상징한다. 코트라 홍콩무역관 통계에 따르면 반환 당시 650만 명이던 홍콩 인구는 2017년 현재 737만 명으로 매우 증가했다. 홍콩을 찾는 관광객 수까지 급증하면서 인구와 주거 문제는 심화하고 있다.
게리 창은 이번 전시에서 벽과 다름없는 협소한 공간을 벽걸이 TV, 침대, 소파, 책상, 옷장 등이 갖춘 집으로 만드는 디자인 '콤팩트 홈'을 선보였다.
그는 "현재 홍콩에서 분양되는 아파트에서 가장 흔한 평수가 전용면적 18㎡일 정도로 집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면서 "이러다 언젠가 집이 벽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나온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집이라고 공간의 효율성만 꾀할 수는 없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공간을 극대화하는 것뿐 아니라 시간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방 자체가 아니라, 거주자가 어떤 시간대에 어떤 공간을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하나의 방도 시간대에 따라서 성격과 용도가 바뀌기 마련이고, 게리 창은 이 점에 착안해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는 "작업을 하다 보니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도메스틱 트랜스포머'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가 주거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집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 괜찮다거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그는 도시 과밀화가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만큼, 더 쾌적한 삶을 위해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의 공간을 단순히 내가 사는 집에 한정 짓지 말고, 도시라고 생각한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요? 공원이나 카페 등 다양한 공공 공간도 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범위의 공공 공간이 들어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도시의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고요."
'콤팩트 홈'뿐 아니라 홍콩 작가들의 다양한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는 '컨플런스' 전시는 9월 16일까지 계속된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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