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도피설 잉락 前태국총리, 두바이서 오빠 탁신 만난 듯
태국 남부→캄보디아→싱가포르→두바이 경로 유력
지지자들 실망…현지 언론 "친나왓 가문정치 막 내렸다" 평가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최고 10년형의 유죄 판결이 예상되는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채 잠적한 잉락 친나왓(50) 전 태국총리가 두바이로 건너가 역시 해외도피중인 오빠 탁신(68)과 만난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이 26일 보도했다.
정부와 칫나왓 가문 소식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은 일간 방콕포스트에 잉락이 재판 이틀 전인 지난 23일 비행기 편으로 태국 남부 뜨랏주(州)로 간 뒤 육상으로 캄보디아에 입국했다고 전했다.
또 소식통들은 이어 잉락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현지 유력 인사 도움으로 외국 여권과 비자를 받아 전세기 편으로 싱가포르를 거쳐 두바이로 건너가 오빠인 탁신과 만났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태국 군부 정권이 잉락의 해외도피를 돕거나 묵인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으나, 태국의 치안업무를 총괄하는 군부 2인자 쁘라윗 왕수완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쁘라윗 부총리는 "그녀는 전직 총리였다. 일부 지역의 공무원들이 그녀를 도왔을 가능성은 있다"며 "그러나 잉락이 뜨랏을 거쳐 육로로 국경검문소를 통해 캄보디아에 들어갔다는 보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잉락은 총리 재임 중인 2011∼2014년 농가 소득보전을 위해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쌀을 수매하는 정책을 폈다.
이 정책은 2000년대 이후 태국에서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승리한 탁신계 정당의 기반인 북동부(이산) 지역 농민들에게서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정책은 잉락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군부는 잉락을 쌀 수매 관련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해 5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했고, 검찰은 재정손실과 부정부패를 방치했다면서 그를 법정에 세웠다.
민사소송에서 무려 350억 바트(약 1조1천700억원)의 벌금을 받고 재산까지 몰수당한 잉락은 25일 쌀 수매 과정의 부정부패를 묵인한 혐의(직무유기)에 대한 형사소송 판결을 앞두고 종적을 감췄다.
태국 대법원은 잉락에 대한 형사소송 선고공판을 다음 달 27일 속개할 예정이며, 잉락이 출석하지 않더라도 궐석재판 형태로 판결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지난 2006년 역시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뒤 권력남용 등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2008년 실형을 피해 자발적 망명을 택한 탁신에 이어 여동생 잉락까지 해외로 도피하자 현지 언론은 친나왓 가문의 정치가 막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유력 영자지 방콕포스트는 1면에 '친나왓 시대 막 내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잉락이 끝까지 싸울 것으로 믿었지만, 우리가 속았다"는 한 지지자들의 발언을 소개했다.
잉락의 푸어타이당을 지지하는 뉴스진행자 좀 펫치쁘라답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당신(잉락)은 전장에서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 민주투사라고 하지 않았느냐. 당신이 나를 속인거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또 일간 '더 네이션'도 '잉락은 수배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사건으로 친나왓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측을 전했다.
정치학자인 쭐라롱껀대 푸엉통 파왁빤 교수는 "이번 사건은 칫나왓 가문과 푸어타이당 정치의 종말을 의미한다"며 "오누이가 도망자 신세가 됨으로써 가문은 정치적 정통성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애디손 나오와논트 라자밧 나꼰라차시마 대학교수는 "잉락이 해외로 도주하면서 푸어타이당의 기반이 약해질 것이며, 앞으로 최소 7∼8년은 군부 정권이 정당들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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