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수교 25주년에 되돌아본 한중 관계
(서울=연합뉴스) 한중 양국이 수교한 지 만 25년이 됐다. 사람으로 치면 한참 혈기왕성한 청년의 나이다. 그런데 지금 양국 간에는 활기 대신 냉기가 흐르고 있다. 그 소원함은 수교 25주년 기념행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중국은 다른 나라와의 수교일이 되면, 5년 단위로 정주년(定週年) 기념행사를 크게 한다. 한중 수교 20주년이던 2012년이 바로 그랬다. 당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양국 공동 주최 행사에는 현 국가주석인 시진핑(習近平) 당시 부주석과 양제츠 외교부장, 왕자루이 당 대외연락부장 등 고위급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중국이 볼 땐 올해도 '정주년'이지만 기념행사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초라하다. 공동 행사는 없고, 서울과 베이징에서 따로 열리는 행사도 약소할 정도다. 정부 차원의 축하 메시지만 교환할 뿐 외교장관은 양국 모두 참석하지 않는다. 물론 사드 배치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라는 악재가 끼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양국 관계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아쉽다.
수교 이후 두 나라 관계는 처음에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중요해졌다. 수교 당시 64억 달러였던 교역 규모가 정점에 오른 2013년에 2천742억 달러로 43배가 됐다. 사드 여파로 급감하기는 했지만 가장 많았던 지난해에는 806만 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찾았다. 다른 분야에서도 수교는 양국 모두에 '윈윈 게임'이었다. 중국은 한국을 통해 서방의 산업 기술과 시장경제 노하우를 수혈받아 G2(주요 2개국) 도약의 기틀을 다쳤다. 한국도 과거 사회주의권으로 외교 영역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받았고, 거대한 중국시장에서 경제성장의 동력을 키웠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초고속 성장 가도를 달리면서 양국 사이의 전략적 지형은 달라졌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철강, 조선, IT(기술정보) 분야에서 턱밑까지 치고 들어와 있다. 중국이 경제 분야의 열세를 뒤집으면서 한국의 외교·안보적 가치는 작아졌다. 그러나 결정타를 안긴 것은 북한이다.
2006년 1차 핵실험을 하면서 북한은 한중 관계에 결정적 악재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 중국이 보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엄청나게 커졌다. 실제로 북한은 5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소형화에 근접했고, 미국 본토 타격을 위협할 만큼 미사일 기술도 고도화했다. 겉으로는 쓴소리하지만 중국이 북한을 꼭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지 않아 미국 주도의 유엔 제재 아래 놓이면서 중국도 국제사회의 제재 동참 압박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지렛대 효과'를 내심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미국과의 힘겨루기에서 좌충우돌하는 북한의 일탈은 미묘한 '변죽 울리기' 카드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대북 유엔 제재가 드러낸 현실적 무력함이 그 반증이다. 유엔은 그동안 '사상 최강'의 수식어를 바꿔갈며 여러 차례 고강도 대북 제재를 발동했지만 북한은 크게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이 지금까지 버텨 왔다. 사실상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의 의도적 방관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사시 북한 핵미사일을 막는 수단인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이 우리한테 무도한 공세를 퍼붓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양국이 초심을 잃지 않고 상호 신뢰를 공고히 하며 이견을 적절히 처리해 한중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추진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중국이 진정 한국과의 관계 발전을 원한다면 그동안 북한 문제에서 보인 이중성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반세기 동안 쌓아온 양국 관계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우리한테 자위적 수단인 사드에 양국 관계의 전부를 걸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국가 간 외교관계의 기본인 상호성의 원칙에서 이 사안을 봐야 한다. 한반도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본다는 동북 3성의 레이더와 미사일을 우리가 문제 삼으면 어쩔 것인가. 이제라도 중국이 G2 위상에 걸맞게 공정하고 합리적인 자세로 돌아와 한중 관계 정상화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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