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금값이면 뭐해? 팔 배추가 없는데"…농가들 시름
강원 대관령 농민 "집중 호우로 상품성 잃어"…작황은 예년의 '절반'
(평창=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배추 농사 20년에 이런 적은 처음이오."
뙤약볕이 내리쬔 22일 오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차항리의 배추밭에서 수확하던 농부 신모(59)씨는 베다 만 배추 밑동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뱉었다.
신씨 앞에는 수확을 기다리는 배추들이 곳곳이 누렇게 변해있었고 쭈글쭈글한 모양이었다.
그는 작물이 상품성을 잃은 것이 날씨 탓이라고 하소연했다.
"한창 비가 필요한 6월에는 가물었다가 배추가 볕을 봐야 할 8월에는 비가 내리쳤다"며 "그러면 배추가 밑이 가고(뿌리가 약해지고) 속이 빈다"고 말했다.
신씨가 건네준 배추를 눌러보니 단단하지 않고 가벼웠다.
그는 "결구율(속이 꽉 찬 정도)이 70% 이상은 나와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데 절반은 버리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작업장으로 향하는 신씨의 발걸음은 시든 배춧잎처럼 힘을 잃었다.
망쳐버린 농사로 시름 하는 것은 농부뿐만이 아니었다.
대관령면에서 배추 운송업을 하는 노승길(52)씨 역시 "8월에 이렇게 한가하기는 15년 만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노씨는 "원래 8월 중순부터는 배추 운송으로 한창 바쁠 시기"라면서 "요 며칠 말고는 일이 없어서 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도 "그나마 대관령은 다행"이라며 "며칠 전 태백 매봉산에 작업 갔을 때는 배추가 다 썩어서 대부분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에 갈 배추도 물량이 달려서 김치 공장으로 들어갈 배추는 거의 없을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가뭄과 무더위, 폭우가 덮친 배추밭의 시름은 전국의 주부들에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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