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풀어 키웠을 뿐인데"…산란계 농장주 DDT 검출에 허탈
"주변에 제초제도 안 써"…과수원 자리라 흙 오염됐을 수도
(영천=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비가 오락가락한 21일 오후 경북 영천에 있는 이모(55)씨 산란계 농장.
주변 마을과 철길을 사이에 두고 있어 외부인은 닭 사육 농장이 있는지 알아채기 어려운 곳이다.
이 농장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683개 친환경 인증 농장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DDT)이 나왔다고 한 2개 농장 중 한 곳이다. 다른 한 농장은 경산에 있다
이씨 농장 달걀에는 DDT가 0.047㎎/㎏ 나왔다. 잔류 허용 기준치(0.1㎎/㎏)보다는 적다.
그러나 친환경 인증 농가는 살충제 등 농약을 쓸 수 없으므로 DDT 등 어떤 잔류 농약이라도 나오면 안 된다.
그러나 농장주 이씨는 이런 결과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지금까지 8년여간 농장을 운영하며 한 번도 살충제 등을 사용한 적 없고 나쁜 균뿐만 아니라 좋은 균도 죽이기 때문에 소독도 한 번 한 적 없다"며 "DDT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칠 수도 없고 칠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현장을 둘러본 결과 닭 분변 냄새가 지독한 일반 밀식 산란계 농장과 달리 분변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
상당히 친환경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점을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 농장은 약 5천940㎡ 땅에 축사 9개 동으로 닭 8천500마리를 키운다.
하루에 생산하는 달걀은 약 2천개. 이 가운데 선별을 거쳐 1천900개 정도가 모두 특정 협동조합으로 납품한다.
이곳은 닭을 야산 등에 완전히 풀어놓고 키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농장 안에서 자유롭게 풀어놓고 외부로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끔 문을 열어 놓았다.
농장 관계자는 "한겨울에 추울 때 빼고는 늘 문을 열어 놓는다"고 밝혔다.
완전히 놓아 기르는 방사식 농장은 아니지만 가둬서 키우는 밀집 사육 농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씨는 "절반 방사식 농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닭장이나 닭장 밖은 모두 맨땅이었다. 닭이 흙 목욕을 하거나 땅을 판 자국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비가 오는 중에도 일부 닭은 밖을 돌아다녔다.
농장 주변에는 풀을 사람이 직접 깎은 자국이 보였다. 이씨는 "제초제를 쓰면 편하겠지만 일일이 손으로 깎는다"고 했다.
닭이 잡아먹어 파리나 모기도 없다고 했다.
상당히 친환경적으로 닭은 키우는 이곳에서 DDT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씨는 농장 자리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던 점을 의심했다.
그는 "내가 이곳에서 산란계 농장을 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복숭아 농장을 했다"며 "그 때문에 땅이 오염됐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DDT는 국내에서는 과거 살충제로 무분별하게 쓰이다가 1979년부터 시판이 금지됐다.
당연히 현재 국내에서는 DDT를 구할 수 없다.
경북도는 다만 이씨 농장 흙에 과거에 사용한 DDT가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부나 소비자단체와 함께 역학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씨는 "DDT가 기준치 이내인 만큼 일반 계란으로 팔아도 된다고 하지만 전혀 거기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DDT 성분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지 기준이 이하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주변 사람은 "이씨가 친환경농장 자부심이 세다"고 했다.
이씨 농장에서 나온 달걀은 1개에 750원에 팔렸다. 일반 계란이 200원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가격 차지가 크다.
달걀 크기는 작지만 전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비싸다.
직접 맛을 보란 얘기에 먹어본 날달걀은 상당히 고소한 맛이 났다.
그는 지난 15일부터 출하하지 못한 달걀 1만4천개 정도를 창고에 쌓아뒀다.
이씨는 "파리 10마리를 연속으로 셀 수 있으면 농장을 가져가도 좋다"며 "고생해서 농장을 만들었는데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또 "DDT에 땅이 오염됐다면 농장을 폐쇄하겠다"며 "앞으로 농촌진흥청이 DDT와 관련해 역학 조사하겠다고 하니 반드시 원인을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농촌진흥청과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이날 오후 이씨 농장과 경산 농장을 찾아가 시료를 채취해 DDT가 있는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sds1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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