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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갈등, 상해임시정부에서 답을 찾다…"우리는 항일운동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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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갈등, 상해임시정부에서 답을 찾다…"우리는 항일운동 동지"

백범 김구·도산 안창호 도왔던 독립운동가 후손 인터뷰

(상하이·자싱=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2년 앞둔 2017년까지 국내에 임시정부 기념관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약속한 건 국가가 뒤늦게나마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와 달리 중국에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보존해온 사람들이 있다.

지난 16∼17일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취를 찾아 떠난 답사에서 항일운동가의 후손들을 만났다.


◇ "한중, 두 나라가 힘 합쳐 항일운동…한중 우의 회복하길"






"김구 선생을 도운 건 자랑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시 남문 매만가 76호.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 후 일제의 포위망이 좁혀왔을 때 김구가 몸을 피했던 2층짜리 목조건물이다.

자싱시정부가 2000년 시급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해 기념관으로 정비된 이곳에는 김구의 은인이었던 주푸청(저<衣변에者>輔成) 선생의 손녀, 주리정(저<衣변에者>離貞·69) 여사가 한국인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 여사는 상해법학원장이자 항일구원회(抗日救援會) 회장이었던 할아버지를 "워낙 큰일을 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신해혁명에 참여하셨고 위안스카이(袁世凱)의 통치에 반대하다 감옥도 두 번이나 다녀오셨다"고 말할 때는 주름진 눈가가 자부심으로 반짝였다.

그는 "할아버지가 김구 선생을 도왔다고 해서 후손들이 어렵게 살진 않았다"며 "다만, 할아버지의 수양아들이었던 첸둥성(陳桐生)은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이 쓰는 폭탄을 보관했는데, 일본군이 그게 보물 상자인 줄 알고 달라고 해서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주 여사는 "1990년대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이 이곳에 와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으면서 중국 정부도 김구피난처의 존재를 인지했다"며 "이후 이 일대에 살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기념관이 만들어졌다. 우리 집안도 사비를 보탰다"고 설명했다.

주 여사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거론, "중국이 못하던 것을 조선이 도와준 것 아니냐. 두 나라가 힘을 합쳐 항일운동을 했던 것"이라며 "요즘 중한관계가 안 좋다고 들었는데 우의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인 이야기라 조심스럽지만 남북통일이 되면 전쟁 우려가 없을 것이고, 그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도 없지 않겠느냐"며 "김구 선생도 통일을 주장했다. 한국 젊은이들이 통일을 이뤄 한반도가 화평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이 자랑스러워…역사를 잊어서는 안돼"







도산 안창호(安昌浩)의 상하이 시절 비서 역할을 했던 조선인 독립운동가 김복형(金復炯) 선생의 손자 김광릉(金廣陵·64)씨.

상해임시정부 기념관에서 만난 김씨는 기념관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이 자랑스럽다"고 힘줘 말했다.

김복형 선생은 1897년 평북에서 태어나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했고, 상해 태창(太昌)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임시정부 내무위원을 지낸 그는 1942년 피살당한 뒤 잊혀졌고, 1998년 김대중 정부 들어서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으며 역사 속에서 부활했다.

백범 김구의 손자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은 2005년 상하이 총영사로 부임했을 당시 김광릉 씨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찾아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김 씨는 할아버지가 살았던 옛집에 아직 살면서 각종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느덧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늘날 이런 생활이 거저 온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많은 선조가 피를 흘렸습니다."

그는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옛일로 지나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며 "기억을 게을리하지 말아달라"로 호소했다.

이어 "한국과 중국 젊은이들이 먼 곳을 내다봤으면 좋겠다"며 "지금 잠시 삐걱대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라고 강조했다.

cla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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